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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05. 2022

다음 고비 들어오세요.

선택권이 없는 선택 1

긴 터널 안에 서있는 것처럼

끝이 안보이던 막막함과 답답함.

그래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왔다.

드디어 6주가 흐르고 깁스를 풀기로 한 시간.

뼈가 제대로 붙긴 했을까,

과연 오늘 깁스를 풀 수 있을까.

병원에 가기 전날 밤부터

막상 그렇게도 기다리던 그 시간이 다가오자

오히려 더 긴장하고 초조해졌다.

게다가 6주 사이에 연우의 컨디션은

극도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호흡이 제대로 안돼 인공호흡기 세팅을 조정했다.

연우가 사용하던 인공호흡기의 모니터화면. 이 화면을 보며 아이의 호흡이 원활히 잘 이뤄지는지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포화도로 얼굴색이 변하고,

몸이 굳어지고,

그런 아이를 살리겠다고 손으로 짜는 인공호흡기로

다시 아이에게 숨을 불어넣고.

아이를 잃을뻔 진땀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면서

인공호흡기로 더 많이 도와주게 설정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인공호흡기 외에도

아이에게 산소를 더 공급해 줄 수 있는 산소발생기를

24시간 내내 돌려야 했다.

인공호흡기만으로도 산소포화도가 유지됐기에

필요할 때만 잠깐씩 써도 될 정도였던

연우의 호흡능력은

이제 산소발생기 없이는

한 시간도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하지만 한번 떨어진 폐기능은 기계의 보조만으로

쉽게 올라오지 못했다.


연우를 괴롭히는 건 호흡뿐만이 아니었다.

칼슘 흡수가 안되다 보니

소변 배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자꾸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는 칼슘들은

이미 연우의 방광쪽에 결석들을 만들어 놓았다.

신장과 교수는


"이런 아이들은 원래 이래요."


라는 무책임한 말로 우리 부부를 경악케 하였고

누워만 지내다보니 수분 보충과 소변만으로

결석을 빼내는 것도 불가능했으며

굳이 그 결석을 부수는 수술을 하자니

아이의 컨디션이 따라주질 않았다.


말도 못 하고 울지도 못하지만

결석과 요도를 막고 있는 칼슘들 때문에

소변을 볼 때마다 연우가 괴로워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연우는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소변 양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열 때마다

소변보다 훨씬 많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하얀 가루들을 보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괴로울까.

엄마면서도 내 새끼의 고통을 그저 가늠만 해보며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깁스를 풀면 마음이라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이의 다리를 감고 있는 깁스를 볼 때마다 밀려오는 죄책감.

욕창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도 해결하고 싶었다.

조금은 초조하고 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이제는 깁스를 풀어도 된다,

는 담당교수의 말을 들었을 때,

여태 진료실 여기저기에서 온갖 무서운 소리를 들어도

담당의사 앞에서 울지 않았던 내가,

그때만큼은 모든 긴장이 풀려버려 그대로  담당교수 앞에서

눈물을 쏟아버렸다.

이날 나는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슬 몸이 으슬으슬해지더니

먹은 것도 없는 빈속인데도 집에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봉지를 붙잡고 위액을 쉴새없이 게워냈다.


'이제 됐다, 다시 예전처럼 평온한 날들로 돌아갈 수 있겠다.'

 

그러나 나의 안도가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한 달 반 만에 할 수 있게 된 목욕이라며 신이 나서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 목욕의자에 눕혔는데

뭔가 이상했다.

부러졌던 다리의 반대쪽 다리.

그러니까 연우의 왼쪽 다리의 골반뼈가

이상하리만큼 튀어나온 것이다.

전에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깁스가 있던 흔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이는 걸까.

혹 깁스 때문에 자꾸만 쳐지던 다리의 골반이

빠져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정말 이번엔 반대쪽 다리에 문제가 생긴 걸까.


급하게 정형외과 외래를 잡고

6개월 후에 보자던 교수를 며칠 만에 다시 찾아갔다.

신생아 때부터 연우를 괴롭혔던 고관절 탈구가

또 문제가 된 건 아닌지.

고관절 탈 수술을 다시 하게 된다면

우린 그 큰 수술을 결정할 수 있을까.

쓰지 않는 고관절이라 자꾸 빠지는 거라면

수술 후에도 또 다시 탈구가 오는 거라면

큰 수술로 아이를 또다시 힘들게 하느니

그냥 이 상태로 잘 유지만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미 고관절탈구를 의심하고 있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진료실 안에서,

담당의사 앞에서 바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나름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설 연휴 전 마지막 외래를 보려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연우의 순서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그토록 싫어하던 고관절 수술이지만

다시 해야 한다면 아이를 위해 선택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을 때

드디어 연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환자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부름이

마치,

"한고비는 넘겼으니 다음 고비 들어오세요."

처럼 들렸다.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찾아올까.

깁스를 푼지 겨우 며칠.

또 어떤 문제가 우리 앞을 막아설까.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나.

우리 세 사람은 비장한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섰다.


'그래, 아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지.

해야 되는 수술이면 해야지.

한번 해봤으니 이번에도 내가 잘 케어할 수 있을 거야.'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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