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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연우 안녕, 연우
13화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4. 2022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미국의 어느 의사가 쓴 칼럼의 제목이다.
의사는 추락으로 생명이 위험해진
아이를 구해냈지만,
뇌손상으로 심각한 후유 장애를 얻게 된 아이와
그 아이를 24시간 간병하게 된
아이의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보며
이런 의문을 가졌다.
"네가 행복을 아는지 확신이 안 간다.
다만 고통을 분명히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구한 게 기쁘니?
너의 엄마와 할머니는 너를 돌보느라
몇십 년 희생해야 한다.
너를 구한 걸 용서할 수 있겠니?"
깁스 후에 잠시 안정을 찾는 듯 했던
연우의 컨디션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의식 없는 아이의 고통은
평소보다 높은 맥박수로 가늠해 볼 뿐이다.
열이 없는지, 부러진 곳이 없는지,
더워서 호흡이 어려운 건 아닌지,
피검사로 염증 수치를 보고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
폐에 음식물이 흡인되었거나
이산화탄소가 차서 뿌옇게 보인다면,
호흡이 힘들어서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올라가는 것일 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가능성을 하나하나 줄여나가는 것뿐이다.
이 가능성 중 하나라도 걸리는 게 없다면
"아이가 어디가 불편한가봐요"
라는 아주 막연한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늘리는 것 말고는
병원도, 부모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골절이 우리 집에 가져온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누워만지내는 환자에게 골절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두려운 존재다.
쓰지 않는 뼈는 약해지고 햇빛을 보지 못한 몸에서는
비타민 합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칼슘 배출의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부러지기 쉬운 몸을 만들어낸다.
말로만 듣던 그 위험한 골절을 막상 겪으니,
뼈가 부러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 변경이나 폐기능 유지를 위한 재활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면서,
연우는 호흡도 불안정해지고,
맥박은 늘 알 수 없이 높았으며,
먹는 것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을 게워내길 수차례였다.
탈수를 막기 위해 먹는 수액 400ml를
아이가 부담되지 않게 한 방울 한 방울씩
다섯 시간이 넘도록 밤새 먹였다.
새벽 한시, 세시, 다섯시.
석션을 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맥박을 살피면서, 두 시간마다 다시 수액을 데우고.
4년 차인 간병 중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매일 밤샘을 하며,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으로 아이 옆에 앉아
멍하니 까만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저
밖에 아무도 없는 거리
의 어둠이 순식간에
내 아이를 덮쳐버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금세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줄타기를 하는 기분.
매일 매순간 우리 옆에 바짝 붙어있는
죽음이란 놈이 더 이상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루 종일, 그리고 다시 밤새 감시하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매일이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내 옆에 누워있는 아이가 남들처럼 웃기를,
목놓아 울어보기를,
눈을 깜빡여보기를,
스스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있어줄 수 있기를,
고통스럽지 않게만 옆에 있기를,
줄이고 줄여 아주 소박한 꿈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아이 옆을 하염없이 지켜내다가도,
아이가 괴로워하는 이 날들에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그저,
아이도 나도 마냥 견뎌내야 하는
그 깜깜한 시간들에
나는 아이에게 수백 번도 더 용서를 구한다.
너무 크게 말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조용히 아이의 귀에 읊조린다.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나는 아주 처음,
너를 만났던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이랬더라면,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을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무력감과 후회.
나를 놓아주지 않는 죄책감을 어깨에 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의 연속.
오늘도 치열하게 너를 지켜낸 나를 자책하면서
또 사죄한다.
"오늘도 너를 살려내서 미안하다."
keyword
아이
용서
죽음
Brunch Book
안녕? 연우 안녕, 연우
11
그렇게 아플 일이 아니라는데 그렇게 아팠다.
12
나는 내가 너무 밉다
13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14
다음 고비 들어오세요.
15
B가 없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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