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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29. 2022

그렇게 아플 일이 아니라는데
그렇게 아팠다.

나는 내가 너무 밉다2

나는 몇 번이고 담당의사를 찾았다. 

연우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경련을 했으며,

쉴 새 없이 가래가 끓고 

기도에선 피도 나왔다. 

애가 타고 답답해서 그 좁디좁은 병상 한 칸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병원 칸막이 커튼만 봐도 트라우마가 올 것 같다. 

한참 후에야 연우의 담당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연우를 살펴보았다. 

마치 '이런 아이'는 원래 이렇지 않냐는 듯.

"큰 수술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힘들어할 리 없다.

인공호흡기를 안 하고 있는 아이라면 

더 위험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인공호흡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아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석션이 늘어나서 손이 좀 더 갈 뿐이지."


늘 봐왔던 엄마의 유난을 상대하는 듯 한 태도.

담당의사의 그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내 귀에 뺨을 날리는 것 같이

아프고 화가 났다. 


손이 좀 더 갈 뿐이지.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아기를 돌본적 있나.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씨리얼이며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새 쏟아지는 졸음에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석션을 해 본 적이 있나. 

내가 하는 석션에 아이의 기도에서 피가 나올 때

이게 맞나,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안절부절못해야 하는 보호자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본 적 있는가. 

 

나 역시 담당의사의 뺨을 한 대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아이는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아프다. 

분명 아프다, 괴롭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10분도 지켜보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들른 당신이 

어째서 아프지 않은 거라고, 

손이 많이 갈 뿐이라고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너무 나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애써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조금의 걱정도 없이 홀연히 우리 커튼을 제치고 떠나는 그를

나는 멍하니 보고 보호자 침대에 주저앉았다. 

'내가 속이 좁은 건가,'

'나는 왜 저 말에 이렇게 화가 나지. '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정말 그 정도로 힘든 수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은데

내가 지금 유난을 떨고 있는 건가.'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

'당신이 지금 내 아이처럼 누워, 

울지도 못하고, 소리도 못 내고, 

온몸으로 괴로워만 해보라고, 

아니면 당신 자식이 그러는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해보라고. '


어린이병원에서 보호자는 약자다.

내 몸이 아플때와 내 자식이 아플 때는 너무도 달라서

나의 위치마저 달라진다. 

나역시 병원에선 늘 약자였다.  

행여 의료진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내 아이가 미움을 살까 봐,

그러면 우리 아기를 덜 봐줄까봐.

내 아기를 미워해서 아프게 주사를 놓기라도 할까봐

싫어도 미워도 그 사람이 잘못 말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여느 날처럼 커튼 뒤에서 몰래 울어야 한다. 

무능하고, 힘없는 내가, 진상이라도 피워야 하는데, 

그랬다가 우리 아이를 더 안봐줄까봐 겁만 많은 내가

나는 너무 미웠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태우고 울어봐도 

연우의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저녁 약을 먹고도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연우를 괴롭혔다. 

열이 나지 않았고, 산소포화도도 괜찮았다. 

그러나 맥박이 이상하리만큼 높았고, 

연우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수없이 아이가 이상하다고 얘기해도, 

열이 나지 않으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괜찮다. 지켜보자 한다. '

연우는 좀처럼 자지도 못했다. 

9시, 10시, 11시, 새벽 2시. 

아무리 석션을 해주고, 시원하게 해 주고, 

내가 하던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봐도 

연우의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 

분명 문제가 있다. 

나는 다시 확신했고, 계속해서 간호사 스테이션을 찾아갔다. 

우리 아이를 봐줄 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담당의는 퇴근했고, 

연락해서 물어봐주겠다던 간호사는 

당직의로부터 그렇게 아플만한 수술은 아니라는 

똑같은 대답과 진통제만 가져왔다. 


지금도 나는 그날 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병실 안에서, 

나는 민폐라는 눈치까지 봐가며 밤새 석션을 했다. 

연우는 밤새 아파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좀처럼 와보지도 않는 당직의로부터

세 시간에 맞춰 진통제만 받아오는 일이었다. 

진통제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통증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온갖 기계와 짐 때문에 아이와 둘이 눕기 버거운 침대에

몸을 구겨 넣고라도 올라가 옆에 누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지만,

내가 아무리 미안하다고 괜찮다고 말해줘도 듣지 못하는 아이지만,

그냥,

그래도 옆에 눕고 싶었다.


"엄마가 여기 있어. "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

"미안해 몰라줘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면서 

고통에 움찔거리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보았다. 

소리도 빛도 없는 병실, 

연우도 지금 같겠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나처럼 혼자 괴로워하며 속으로 울었겠지. 

우리 둘에게 아주 길고 길었던 밤이었다. 


"그렇게 아파할 수술이 아니다. 지켜보자. "


얼마큼 아파야 그렇게 아플 수술일까. 

만약 그만큼 아픈 수술이었어도,

그럼 아프다고 울거나 고래고래 악을 쓸 수 없는 내 아이는

이보다 어떻게 더 아프다고 표현해야 살펴봐줄까. 

그렇게 아플 수술이 아니었던 그 밤에 

울지 못하는 내 아기와 울음을 참아야 했던 나는 

정말 많이 아팠다. 

(다음 편에 이어서...)

감기인가 입혀도 보고, 더운가 벗겨도 보고. 뭘해봐도 불평하고 힘들어했던 우리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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