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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28. 2022

어땠을까.

나는 내가 너무 밉다1

남들에 비하면 

평범하다는 말이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과 2교대 간병, 하루 종일 석션, 

그리고 콧줄 수유. 

일주일에 한 번은

목에 인공호흡기 연결해주는 케뉼라 교체하기. 

2주에 한번 콧줄 새로 갈아 끼워주기. 

한 달에 한번,

인공호흡기 업체에서 방문하면 부품 교체하기. 

이틀에 한번 목욕시키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간병 스케줄 속에서도, 

연우는 잘 지내주었고, 

하루하루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자라고 있는

연우가 기특했다. 


날 좋은 가을날에 우리는 연우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용기를 내기도 했다. 

연우의 생애 첫 미용, 

미용실 직원 모두 티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연우의 상태를 보고 흠칫 놀라는 듯했다. 

남편과 나는 평소처럼 애써 모른척하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연우를 마주 안았다. 

혼자서 의자에 앉을 수 없는 연우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인공호흡기가 빠지지 않게 잡아주면서,

드디어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미용이 시작되었다. 

이날만큼은 우리도 다른 부부와 같이 

평범한 경험을 해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딘지 아이의 첫 미용을 함께한다는 것 뿐이었지만

우리를 설레게하기 충분했다.

남들이 하는 무언가를 우리 아이도 함께 해봤다는, 

이 작은 사실 하나로도 이날 우리 부부는

굉장히 벅차고 들뜬 하루를 보낸 것이다.

입원하기 전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를 잘라본 우리 연우


선선한 가을바람에 산책도 나가보고, 

4살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생일 파티도 해보고,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이었지만 

그 별거 없는 일상이 우리에게 너무 소중했기에

이대로만 지냈으면,

싶었던 날들이었지만,

마치 누가 내 행복을 들여다 보고있기라도 했던걸까.

시샘이라도 받은 것처럼,

'지금이 딱 좋다' 하는 그 순간에,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연우의 입원이 결정된 것이다. 


누워만 지내서 스스로 삼킴이 없는 아기들에게 

귀에 발생하는 중이염이 고질병 중 하나이다.

콧물과 가래, 침은 자꾸 역류하는데,

스스로 넘길 수 없다 보니 자꾸만 귀에 물이 찬다.  

이미 한 번 양쪽 귀에 

새끼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튜브를 삽입하는 

수술을 했지만, 

이 튜브는 몇 개월만 지나면 다시 빠져버리기 때문에 

누워 지내는 중증환아들에게 중이염은 

고관절탙구만큼이나 아이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질병 중 하나이다. 


"당장 급하진 않지만 오래 두면 고막이 망가질 수 있어요. "


담당교수의 말처럼 중이염은 발생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막에 내내 물이 차 있으면 

결국 그 고막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이의 수술과 입원을 내 손으로 결정해야 했다.

뇌의 치명적인 손상으로 고막마저 제 기능을 못하고

청력 반응이 전혀 없는 아이였지만,

내 눈에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더군다나 아이의 고막이 망가질 수 있다는 말이

계속 내 귓가에 맴돌며 괴롭게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때,

'어쩌면'이라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가 언젠가 깨어나게 된다면 '

'어쩌면 우리 아이가 언젠가 들을 수 있게 된다면'

라는 마음속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멀쩡한 그 고막마저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수술이라면
너무 추워지기 전에 하고 싶다고,

11월 중순으로 수술을 잡았다. 

건강한 아이들은 반나절만에 퇴원하기도 하는 

시술에 그치지만,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우리 아기는 

수술장에 전신마취 상태로 들어간 다음 

호흡이 회복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서 

입원이 필요했다. 

문제는 코로나 중 입원이어서 

음성 확인을 마친 한 명의 보호자만이 

병실에 상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24시간 손이 가는 우리 아기를 

혼자서 며칠 내내 간병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틀에 한 번꼴로 코로나 검사를 받아가며, 

한 시간 넘는 거리에서 퇴근하는 남편과 저녁 교대를 하고, 

밤새 아이를 간병한 남편을

다시 새벽 출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 혼자 연우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이사 때문에 하루정도 남편과 떨어져 있긴 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2박 이상을 혼자서 간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나 아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중증환아들은

온도와 습도에 상당히 예민하다. 

한 자 세로 가만히 누워있기 때문에 수시로 더워했고,

땀이라도 난다면 바닥에 닿아있는 몸 곳곳의 피부는 망가진다.

등에 욕창이라도 한번 생기면 

그때부턴 환자도 간병하는 보호자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습도는 삼킴과 관련된다. 

습한 날일수록 

비슷한 증상의 아이를 돌보는 엄마 아빠들끼리는 

'손목이 거덜 날 지경'이라고 할 만큼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붙어서 석션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1년 내내 서늘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여려 명이 같이 써야 하는 병실은 그렇지 못하다. 

새벽엔 추웠다가 

낮에는 좁은 병상 커튼 속에서 

여러 기계가 내내 돌아가고 있으니 상당히 덥다. 

습도도 제맘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병실 침대 한쪽은 이미 기계들로 가득 차있다.
덥고 습한 병실에 연우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지쳐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우는 

입원 첫날부터 아주 힘들어했다. 

끊임없이 콧물과 침이 흐르고, 

집에선 안 하던 경기까지 나타날 정도로 괴로워했다. 

아파도 울 수 없고, 소리도 지를 수 없는 나의 아기는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와중에도 수술 준비는 순조로워서 

별다른 체내 이상 반응이 없으니 

예정대로 수술은 진행되었다. 

다행히 수술 후에도 호흡 회복이 나쁘지 않아 

연우는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바로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수술들에 비해 제법 간단하다고 여겨지는 수술. 

그러나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연우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분명 큰 수술이 아니라고 했는데...

수술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수술이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나는 연우를 보내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11월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그때 아이를 입원시키지 않았더라면, 

우린 지금 함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때 작은 문제들은 무시하고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우리의 평범한 날들을 이어갔다면,

어쩌면 우리의 평범한 날들이 지금까지 오고 있진 않을까. 

나는 그때의 내가 아직도 많이 밉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연우가 수술을 하고 힘들어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우린 지금 어땠을까.  

(다음 편에 이어서...)

입원하러 가던 길의 연우. 이때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우린 지금 함께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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