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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26. 2022

눈빛으로 죽이는 사람들

나의 간병일지

우린 늘 남의 눈에 띄었다.

평범해 보이는 유모차지만 

그 옆으로, 밑으로, 손잡이로 

주렁주렁 짐이 달렸고,

유모차를 끄는 사람 옆에는 

휴대용 석션기와 휴대용 산소 발생기, 

비상용 의료용품이 가득한 백팩까지 

중무장한 남편이 꼭 같이 다녔다. 


잠시 카페에 놀러 가도, 병원에 가도, 

쇼핑몰에 가도 늘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전기가 들어오는 콘센트가 필요했다.

인공호흡기에도, 산소포화도 측정 모니터에도, 

석션기에도 산소 발생기에도,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모든 기계에는 

틈날 때마다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분명 휴대용이지만 충전으로 유지되는 시간이 길지 않고, 

방전은 곧 아이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전기 없는 곳에서 나와 남편은 항상 불안하고 애가 탔다. 


한 번은 병원 외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석션기 배터리가 방전돼 무작정 차를 돌려 

인근 병원으로 달려들어가 콘센트에 전기를 꽂기도, 

큰 맘먹고 떠났던 여행에서는

숙소 주차장 도착과 동시에 

인공호흡기 배터리에 0%가 뜨는 바람에

질겁하고 애를 안고, 

인공호흡기를 들고, 

프런트로 달려가 콘센트 좀 꽂아달라고

다짜고짜 울먹이며 애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출이 참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인지라 집에서만 지내는

간병생활이 답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유모차가 갈 수 있고, 전기가 보장되는 곳. 

우리는 의료용품을 잔뜩 들고 

어울리지도 않게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에 가서도 우리의 지정석은 정해져 있었다.

화장실 입구에 정수기가 있는 곳, 

소파와 구석에 콘센트가 있는 곳. 

우리는 그곳에 멀티탭을 연결해서 

아이에게 필요한 기계들을 주렁주렁 연결하고, 

한 사람이 구경을 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 올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아이와 지정석을 지키고 앉아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면서 

앉아있어야 했다. 


아이의 수유시간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 환자식을 데워 

주사기로 콧줄에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장난감 코너에서 잔뜩 쇼핑을 하고 

신난 얼굴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엄마 손에 이끌려 화장실로 들어갈 때마다 

여기까지 와서도

화장실 앞에만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게 너무 싫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내 아이를 구경할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괴로워서 

들뜬 맘으로 나선 오랜만의 외출들은

거의 항상 울적하게 끝나곤 했다.


병원에서도, 쇼핑몰에서도, 카페에서도.

화장실 앞, 비상구 앞, 소화전 앞.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세상은 고작 그런 곳들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편한 시선들이 자꾸 찔러대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고 싶은 우리 가족의 추억은

늘 분노와 상처가 따라야 했다. 

우리는 어디서나 소란스러웠다. 

스스로는 전혀 삼킴 반사가 없는 아기는 

수시로 침과 가래가 끓었기 때문에 

석션기는 상시 가동되었다. 

아무리 사람 많은 병원 로비 한복판에서도, 

다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음악까지 틀어져 있는 

카페 구석에서도, 

내 기분에는 우리 석션기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자신들은 절대 발 들일 리 없는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 

따뜻하지도 전혀 반갑지도 않은 시선들이 

자꾸 우리를 따라다녔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 마주치는 엄마 아빠들은 

얼른 다시 뒤를 돌아 우리 아이를 보고 싶어 하거나, 

한번 꽂힌 시선을 쉽게 떼지 못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당신들도 아파서 병원에 온 거면서 

우리 아이를 빙 둘러싸고 들여다 보며 

혀끝을 차기 일쑤였다. 

어린이병원은 분명 아픈 아이들이 오는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아이가 가장 아파 보였는지 

팔이 부러진 자기 손녀를 안고도, 

우리 아기를 보면서 혀를 차던 할아버지.

피를 뽑고 나와 우는 당신들의 아이에게 

기계가 여럿 달려있는 우리 아이를 

동물원 동물 보여주듯 

"저기 애기 봐라, 애기 봐봐"

하며 달래주던 철없던 부모들, 또 그들의 부모들. 

나, 남편, 우리 연우. 

이렇게 단 세 사람만이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늘 콘센트 앞에 모여 앉아 쏟아지는 시선들을 

애써 모른 척 애써 괜찮은 척해야 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핑계 삼은 

애정 1도 없는 무례한 시선들에 나는 싸우고 싶어 

일부러 뚫어져라 마주 봤다. 

내 아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도 

자신을 향한 내 시선을 느끼면 

다들 뭔가 들킨 것처럼 황급히 눈빛을 거둔다. 

그 모습도 나는 너무 싫었다. 

그렇게 눈으로 반항하고 

내 새끼를 지키겠다고 날을 세우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관찰했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당신의 눈빛이 

때로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가 받은 것은 관심도 배려도 아닌 

무례한 호기심,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오만함들이었다.

뒤늦은 후회지만 나도 따끔하게 알려줄 걸 그랬다. 

당신이 못 가진 걸 나도 갖고 있다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 예쁜 아기를 갖고 있다고. 

그러니 더 이상 그렇게 눈빛으로 

우리를 짓밟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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