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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19. 2022

'이런 아이'는 원래 그래요

나의 간병일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100일, 

일반 병동에서 다시 석 달을 보낸 후, 

사설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본격적인 간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인공호흡기와 가정용 산소발생기를 두고,

맥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모니터와

콧줄로 분유와 약을 먹일 때 쓸 주사기들,

스스로 넘기지 못하는 가래와 침을 뽑아줄

석션기와 석션 용품들. 

우리 집은 1인 병실과 같았다. 


물론 병원보다 부족했지만 

최대한 병원과 같은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아이를 간병하려고 

노력했다. 

한 달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있는 외래를 

나서는 과정은 이랬다. 

외래 전날 밤이면 

석션기 휴대용 산소발생기의 충전기를 

반드시 콘센트에 꽂아둬야 한다. 

외출 시에도 필요한 기기들이기 때문에 

무선으로 사용하려면 충전은 필수다. 

밤을 새가며 석션을 했지만, 

아침 약을 거르지 않으려면

새벽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첫 수유를 한다. 

병원 진료가 밀리거나 

검사 때문에 수유시간이 엉키면 

다섯시간 이상 아기가 굶을 수도 있기 때문에 

꼭 미리 먹여야 한다.

아침 약과 첫끼를 먹이는 데 한 시간 반, 

소화시키는 데 30분, 

그사이 우리는 씻고,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 

외출 준비를 한다. 


기저귀, 휴대용 석션기, 석션 튜브, 

석션을 위한 식염수와 멸균 장갑, 

밖에서도 맥박과 산소포화도는 확인해야 하니 

모니터를 유모차 가방에 넣는다. 

백팩에는 혹시 외래가 길어질 때를 대비하여

아이의 환자식, 

환자식을 콧줄로 밀어 넣어줄 주사기,

젖병과 환자식을 데울 수 있는 워머,

콧줄이 빠질 때를 대비한 예비 콧줄, 

예비 케뉼라,

(인공호흡기와 기도 구멍을 연결해주는 튜브) 

언제 찢어질지 모르니 인공호흡기 튜브,

수시로 토하는 아이기 때문에 

혹시 몰라 갈아입힐 옷, 

체온계, 해열제, 눈에 넣는 연고,

얼굴에 붙여둔 콧줄이 떨어질라 밴드까지.

장애인용 휠체어형 유모차에 인공호흡기까지 하면, 

4인승 세단이 가득 찰 만큼 짐이 한가득이다. 


그렇게도 열을 올리며 열심히 준비했건만 

우리의 외래는 늘 차갑게 끝나버렸다.


"이런 아이는 원래 이래요."

"이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어요."


이런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정확히 난 모르겠다. 

아마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돌려 말한 것일지도. 

그러나 이런 아이들은 

이것밖에 안된다는 말은

매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댔기 때문에

돌려 말한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대로 감을 수 없어서, 

24시간 가까이 뜨고 있는 눈을 보여주면 

안과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없다' 

'이것이 최선이다' 

'엄마가 관리를 잘해주고 계신다'

뿐이었다. 


걸음마를 시작했어야 할,

제때에 쓰지 못한 다리는 

고관절을 빠지게 만들었고,

어느 늦은 밤 병실에 왔던 한 교수는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남은 수명이 2년이 될 것으면 수술을 하고, 

2년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수술을 하지 말라며,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지만,

어느 부모가 아이의 수명을 점칠까,

연우는 겨우 100일이 지난 작은 몸으로 큰 수술을 견뎠고,

세상 불편한 깁스까지 해냈지만, 

끝내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지막까지 고관절이라는 놈은 연우를 괴롭혔다.

이역시 연우가 이런 아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생후 100일지나 아주 작은 아기 몸으로 고관절수술이라는 큰수술을 했던 우리 연우


연우를 간병하며 인체의 신비를 참 많이 배웠는데, 

쓰지 않는 우리 몸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퇴화한다는 것이다. 

쓰지 않는 근육은 짧아져 더 이상 펼 수 없게 되고, 

쓰지 않는 뼈는 그 안에서 칼슘들이 빠져나가면서, 

소변길을 막고 결국에는 소변의 배출마저 어렵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병원의 교수지만, 

간절한 부모 맘에 꽂아주는 대답은 

"이런 아이들은 원래 이래요" 

뿐이었다. 


폐는 쓰지 않으면 접힌다. 

하루에도 수십 번 틈만 나면 두드려 줘야 한다. 

스스로 숨을 쉬면서 커지고 작아지는 움직임이 없으면

접힌 채로 있는 것이다. 

펴지 않는 발목 근육은 짧아져 

더 이상 발 뒤꿈치가 바닥에 평행하기 어렵고,

꽉 쥔 채로 강직되어버린 손은 

아기가 엄마손을 기특하게 잡은 것이 아니라, 

차마 필래야 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지난번 하고 비슷하네요.'

'이런 아이들은 원래 이래요'

'엄마가 워낙 잘해주고 계시니까'

'더 볼 건 없는 것 같군요'


라고 말하는 의사들을 한 바퀴 돌고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새벽부터 나는 뭘 기대하고 분주히 움직였는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도 괜찮아.'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 곁에만 있어도 괜찮아.'

를 외치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었던가. 

하지만 

내가 뭔가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그저,

"이런 아이는 원래 이래요"

대신,

아주 조금만,

다른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태지만, 늘 의식이 없지만, 

전처럼 감지 못하는 눈이지만, 

오늘도 소변은 잘 못 나오고, 

고관절은 빠져있고, 

폐는 약하고, 

청력 반응은 전혀 없지만, 


"오늘은 이렇네요! 

다음에는 어떨지 6개월 뒤에 볼까요?"


라고 말하는 단 한 명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아이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연우지. 

단 하루라도,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길 기다리는 이연우지, 

그냥 '이런 아이'가 아니니까. 


'이런 아이'는 '원래 이렇다'며,

무심하게 말하는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잡히지도 않는 혈관에 

팔 다리 돌아가며 

주삿바늘을 몇 번씩 찌르고,

뇌파검사 때문에 놀라 경기가 더 심해지는데도, 

빨리 한번에 해야한다고 재촉하는 선생님때문에,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뭔지도 모르는 달램을 받으며 무작정 해야하며,

엑스레이를 찍으려면 행여 토할라 

밥도 몇시간씩 굶어야 하는 우리 아기는,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닌, 

우리에겐 하나뿐인 너무 소중하고 가여운,

연우라는 것을, 

물론 당신들이 알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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