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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18. 2022

제가 이걸 왜 해요..2

나의 간병일지

결국 우리 부부가 졌다. 

사실 우리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기관절개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꽤 오래 버틴 보호자였다. 


면회를 오래 다니다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간호사 선생님들이 신경을 써줘도

울며 보채는 아기들 사이에서 

조용히 누워있는 우리 연우는 

가장 손이 안 가는 아기일 수밖에 없었다. 


면회시간 아기를 보러가면, 

등 밑에서 채혈 후 남기고 간

주삿바늘이 나오기도, 

수유시간에는 한 유닛(대개 8-10명의 아기가 있다)에서

단 두 명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정신없이 

동시에 그 많은 아기들을 먹이다 보니,

남들처럼 수유와 소화가 되지 않는 우리 연우는

조용히 게워내고 이미 코나 입에 말라 

붙어 있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의료 지식 하나 없는 내가,

병원과는 너무 다른 우리 집에서,

과연 연우를 잘 돌볼 수 있을까 

너무 겁이 났지만, 

연우를 위해서라도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막상 수술 동의를 하고 나니 

연우가 방 빼주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목에 구멍을 내는 그 수술을 하고, 

어느 정도 가정용 인공호흡기(홈벤트)에 

적응이 되자마자 연우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일반 병실로 와 남편과 나, 그리고 연우. 

처음 우리 세 사람만 있었을 때의 

그 느낌은 너무 생소했다. 

단 한 번도 아이와 이렇게 있어본 적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몰랐고,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까 겁이나, 

갸륵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일반병실로 처음 왔을 때 연우,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 눕혀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는 것도 정말 잠시였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몰아쳤다. 

삼킴 반사도 없는 아기는 

수시로 입에 침이 고이고 가래가 끓었다. 

그 때문에 나는 군기가 바짝 든 신참 병사처럼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며

콧물이 흐르거나, 입에 가래나 침이 그렁그렁하면

석션기라는 기계에 카테터라는 고무 튜브를 연결해서

그것을 입이나 코로 넣어, 

압력으로 빨아들였다. 

이 작업(?)은 대략 1분에 수차례도 이루어졌다. 

때문에 한 시간만 지났는데도 

처음 해보는 일들에

이미 어깨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한순간도 석션을 멈출 수 없게 되고부터는 남편과 2교대로 간병을 시작했다

보통의 초보 엄마들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는 일들과는 많이 달랐다. 

생후 100일이 지났지만 

겨우 50ml 정도 되는 분유를

약 2시간에 걸쳐 먹여야 소화시킬 수 있는 아기를 위해

50cc 주사기에 분유를 조금씩 옮겨 담아가며

두 시간 내내 들고 있기를, 

하루 세 시간 간격으로 여섯 번에서 일곱 번.

저 작은 주사기 안에 든 모유나 분유를 두 시간이나 걸려 먹여야 할 정도로 소화가 어려웠다


문제는 내가 배워야 할 처치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점.

목에 구멍을 낸 수술 부위를 나에게 소독하라 했다. 

우리 병실에는 인턴 의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술부위의 소독법, 

일주일에 한 번 인공호흡기와 기도 구멍 사이에 꽂는

멸균 튜브를 교체하는 법,

콧줄을 코에서부터 위로 집어넣는 법까지 

세세하게 가르쳤다. 


병실로 옮겨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는

인턴이나 담당의가 보는 앞에서 검사 받 듯

멸균 장갑을 끼고, 

아이의 호흡이나 맥박을 체크하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에 있는 호흡기와 멸균 튜브를 직접 빼고, 

구멍이 뻥 뚫린 모습이 

내 맘에도 구멍을 뚫어버리는 것처럼 아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치여서 애써 모른척하면서, 

소독액을 재빠르게 바른 후, 

그 구멍이 스스로 붙어버리기 전에 

새로 뜯어둔 멸균 튜브를 밀어 넣고 

다시 인공호흡기를 연결한다. 

그 사이 호흡이 떨어지거나 심정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심폐소생술이나 수동식 호흡기 또한 

준비하는 걸 잊지 않는다. 


코로 튜브를 밀어 넣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는데, 

아무리 반사가 없는 아기여도 통증은 느끼는 건지, 

30cm에 가까운 튜브를 잘못 찌르면 

얼굴이 움찔거리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수유시간에 맞춰 아기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는 

그 튜브가 필요하므로 두렵다고 멈출 수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콧 속에는 구멍을 통해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이 튜브가 기도로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만약 기도로 넘어간 채 수유를 하게 되면, 

폐로 음식물이 흡인되기 때문에 심각한, 

흡인성 폐렴을 유발할 수 있다. 

때문에 콧줄을 넣은 다음에는 

이것이 위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항상 찍어야 했다. 

때문에 콧줄을 넣는 일은 

심리적으로도 부담스러웠고

그 자체로도 상당한 스킬이 필요했으며, 

엑스레이로 확인 작업까지 하려면 시간도 많이 필요했다.

모든 처치를 마치고 나면 

방송할 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등에 땀이 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껴질 정도였다.

목에 있는 캐뉼라는 교체하고 소독하는 모습
코로 콧줄을 넣어 위까지 연결하는 모습


"나중엔 어머님들이 더 전문가처럼 잘하세요."


이 와중에 격려라고 이렇게 말하던 

선생님들의 말이 얼마나 얄밉던지. 

이런 일들을 할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를 

속사포랩처럼 계속 되뇌면서 했다. 

코로 밀어 넣는 것이든, 

목의 구멍에 밀어 넣는 것이든, 

내 손으로 아기를 괴롭게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모든 위기 순간을

내가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끔찍했다. 


병원 편의점에 이른 저녁거리를 사러 가다, 

우연히 담당교수를 만났다. 

그녀의 몇 마디 위로에  나는

그동안 쌓인 걸 터뜨리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제가 이걸 왜 해요. "

"병원에서 사람을 살려야지!!"

"제가 이걸 왜 해요 도대체!"

"집에서 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저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닌데,

제가 이걸 다 어떻게 해요!!"


그날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짐승처럼 울부짖기만 했다.


교수는 그날의 일이 신경 쓰였던지, 

우리는 일반병실에서도 석 달을 더 지냈다. 

별다른 치료 없이 장기 입원을 할 수 있는 건

이레적인 일이었다.

담당교수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모든 처치가 손에 익을 때까지 

병원에서 모든 상황을 연습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중증 환아를 병상을 차지할 수 없도록

집으로 보낸다. 

맞벌이를 하던 부부는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하지만

베이비시터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일을 포기하고 아이의 간병을 시작한다. 

하지만 엄연히 말해,

의료 전문가가 아닌 부모의 가정에서 행하는

의료행위 역시 불법이다. 

중증장애인 돌봄 서비스라는 것도 있지만, 

해당 나이가 지나야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고,

이역시 해당인의 의료행위도 불가능하다. 


지금은 응급실로 내원하면 튜브 교체 등의 

주요 처치는 병원에서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아마 우리에게 그런 교육을 해준 의사는 조금은 

옛날식 간병 시스템을 지향하느라 우리에게 그런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증 환아 가정에서는 

석션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과 함께하고 있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어서 의료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도 맞지만, 

부모 두 사람이 2교대로 거의 24시간 내내

(보통 한 사람은 경제활동도 해야 한다)

오롯이 집에서 아이의 간병을 떠안는 

지금의 시스템은 아쉬운 점이 많다. 


아이에게 의료적 처치를 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내 손으로 내 아이에게 불편한 일을 해야 하는 것, 

하지만 살리려면, 먹이려면, 내가 해야 하는 것. 

그때마다 손이 떨리고 땀이 나고 눈물이 쏟아졌지만,

결국 내 아이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고, 

내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것도 나라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노하우도 생겼다.

그러나 콧줄이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아 코피가 나거나,

멸균 튜브를 목에 껴넣으려는 순간 구멍이 붙으려고 하면

'제발 제발 제발'을 외치며 비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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