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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16. 2022

조리원이 지옥인 여자..2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60

사실 예약해둔 조리원은 있었다. 

깔끔한 시설에, 

면회는 어디서 하는지 확인했으며, 

산모 프로그램은 뭐가 있는지, 

포함 금액으로 만삭사진까지 찍었고, 

성장앨범까지 포함된,

남편이 퇴근하면 

어디에 주차를 하고 올 것인지도 생각해둔,

산후조리원과 계약을 완료한 상태였다. 


그 계약으로 나는 

출산 후 내가 어떤 과정을 거칠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리원부터도 계획이 틀어진 

지금의 나는,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산후조리원 입소선물, 우리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산후 조리원의 여자들은 아기가 있었다. 

나는 조리원의 아기 없는 여자였다. 


신생아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유리창 너머에

내 아기는 없었다. 

그게 너무 서러워 

유축시간에 맞춰 젖병을 가지러 갈 때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조리원 거실에서는 

시간 맞춰 산모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거나 

아기 모빌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방안에 처박혀 TV 채널을 수없이 돌렸다. 


식사 시간에 식당에 산모들이 모일 때면

저마다 출산 썰(?)을 푸느라 바빴다.

특히 둘째맘, 셋째맘들은 여유롭게 

육아 지식을 뽐냈고,

그녀들 주위에는 늘 정보를 얻기 위해

맴도는 초보맘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리원 거실을 가로질러 

수유실 냉장고만 오가는,

그녀들 눈에는 너무도 궁금한,

아기 없는 여자였다.


새벽 유축 시간이면, 

남편이 깰까 봐 불 꺼진 방 안에서 

서툰 손길로 유축을 하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는 모유를 얼리러 수유실로 갔다.

졸린 눈을 하고 소파에 앉아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내가 수유실 문을 열 때마다,

아기가 깰까 봐 예민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청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어차피 내 것밖에 없는 냉동실 모유들 틈에

또 내 모유를 얼른 끼워넣었다.

조용히 나가야지, 해도, 

아기들은 왜 그리 잠결에도 칭얼대는지.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들다가도 

나오는 길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니 

유리창 너머 아기들을 맘껏 바라본다.

여기 어디쯤 내 아기가 있는 상상을 하다 

하품을 하기도, 배냇짓을 하기도 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자면

내 아기는 전혀 하지 않는 몸짓들에 '

다시 눈물이 터지고,

남편이 깰까 봐 곧장 방으로 가지는 못한 채

조리원 거실에 놓인 

안마의자 속에 몸을 파묻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의식 없는 아기'

'뇌손상 아기'

'신생아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

'소아마비 아기'

이것저것 검색해보며 

내 아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 될까 수없이 찾아보았다. 


행복한 이유는 모두 비슷해도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라던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아픈 아기의 예후는 

하나하나가 너무 달라서였을까.

나의 아기와 같은 증상은 

좀처럼 단어 몇 개로 

검색되지 않았다.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내 앞날도, 우리 아기의 앞날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막막하고 두려웠다.


끊임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로 가득한 곳,

주말이면 축하하는 가족들이 찾아오고,

행복한 부부의 얼굴들만 있는 곳. 

산모들에게 천국이라는 조리원은 

아픈 아기를 두고 

하루하루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나에게는 그보다 더한 곳은 없는
지옥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유일한 낙이었던 하루 두 번, 면회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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