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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13. 2022

조리원이 지옥인 여자..1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57

뱃속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쳐져있었고,

나오면서 울지 못한 아기,

그래서 우리 아기는 신생아 저산소성허혈성뇌증,

쉽게 말해,

심각한 뇌손상으로 의식이 없는 아기였다.


호흡이나 소화, 반사 등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뇌의 뇌간이라는 부위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나의 아기는 스스로 숨을 쉬지도,

눈을 깜빡이거나 손, 발을 움직이도 못하였다.


마취에서 깨어나는데 시간이 필요한 탓에,

남편보다 하루 늦게

아기를 보러 중환자실에 갔다.


신생아실, 바로 옆에

아중환자실이

나의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신생아실로 들어서던

부부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들뜬 맘을 감추지 못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부럽다 못해 조금 미운 날도 있었다.

 

출산이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아기를 분만실에서 만나면

어떤 인사를 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해'

혹은 이보다 멋진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태어난 내 아기가

힘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아이를 아프게 낳은 내가,

이렇게 만든 내가,

행여 한마디라도 꺼낸다면,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아이가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

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숨이 멎을 것처럼 울어버렸다.


내 아기와의 첫 만남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감격스럽고 따스한 것이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작은 아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으며,

인공호흡기에 알 수 없는 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에,

죄책감과 슬픔, 두려움들이 순식간에 뒤섞여

차마 표현하기도 어려운 괴로움에 짓눌려버렸다.

아침, 저녁 면회시간마다 담당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래서 우리 아기가 가망이 있다는거야 없다는거야'를

알아듣고 싶었지만,

전문용어를 다 빼고 정리해봐도,

별다른 차도는 없었으며,

이대로는 생명유지조차 어렵거나 ,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삽입하기 위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은

'좋아질 것이다'라는 장담은

조금도 없이,

최악의 최악을 얘기하며,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도 하였다.


퇴원 날짜가 잡혔기 때문에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산후조리원을 급하게 예약했다.

퇴원하는 날,

다른 산모들처럼 아기를 안고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들을 느끼며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아기를 혼자 두고 병원을 나선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기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밤새 뒤척이던 나는

결국 새벽부터 일어나 아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마땅한 편지지조차 없어

급하게 가지고 있던 산모수첩 마지막 장을 뜯어,

아기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편지로 적었다.

더 사랑해주겠다고 더 힘내자고,

조금 미리 아픈 것뿐이니 걱정하지 말자고.

휴게실 티비 앞 소파 구석에서,

참 많이 울면서 적은 그 말들이

지금 보면,

마치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기도 하다.


퇴원 날 아침 면회를 마치고,

'그래도 병원 코 앞이니까' 라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달래면서

산모들에게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천국이었을 그곳은

나에겐 매일이 지옥 같은 곳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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