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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10. 2022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었을지도..3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54

회복실에서 누워있는 나를 대신해, 

나보다 먼저 담당의사와 아기를 만나본 남편이

이번 편을 작성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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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오면서 말했다.


“아이가 많이 처져 있더라고요.”

“네? 처져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시죠?”

“팔, 다리가 좀 처져있었어요.”


방금 전 아내의 몸에서 딸 쑥복이를 꺼내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이 말에도

나는 정확하게 쑥복이의 상태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의사는 

'엄마 뱃속에서 산소공급이 잘 안 된 것 같고', 

'아이를 꺼내자마자 기도 삽관을 한 상태'

라고 했다.


의사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나는 주저앉거나, 흐느껴 울지 않았는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쑥복이는 아내의 뱃속에 잘 있었고,

(우린 그런 줄 알았다)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제왕절개로 아이가 태어난 상황이라서,

말 그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오는 동안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나는 아내의 상태가 더 궁금하고 걱정됐다. 

쑥복이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았다기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쑥복이는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다. 


아내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니.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의사는 사라졌다. 


그때부터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처남댁 

그리고 나는 

침묵 속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장모님은 간헐적으로 ‘괜찮을 거야’를 반복하셨고, 

나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지정된 면회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나와 장모님은 아내가 병실로 올라오기 전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다.


예정일보다 5주 일찍 태어난 쑥복이는 너무 작았고, 

자그마한 입에는 인공호흡기 관이 들어가 있었다. 

병원 아기 포에 싸여 있는 쑥복이는 

몇 초에 한 번씩 헐떡이는 것처럼 숨을 들이쉬었고, 

울거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만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와 장모님은 쑥복이를 만지지 못했다. 

인공호흡기를 꽂고 있는, 

35주 만에 태어난 이른둥이 내 딸은

잘못 만지면 부서질 것처럼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다.


딸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해서 

한동안 그 순간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예정에 없었던 수술로 

갑자기 아이를 만나게 됐어도,

'이 세상에 오느라 고생했다'고,

'너무나 축하하고 잘 왔다'고,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고, 

딸에게 말했어야 한다.
 

애써서 힘들게 빛을 보게된 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나는 

세상 가장 못난 아빠다.

눈물 버튼 따위는 없이 살아온 나한테

그날 보라매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딸과의 첫 만남은 

평생의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 


잠깐 동안 아이를 만나 사진을 찍은 후 

전공의로 보이는 의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수술로 아이를 꺼냈을 당시 

아이는 자발 호흡이 없었고 

곧바로 인공호흡을 했는데도 

계속 자발 호흡이 없어서

기도 삽관을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자세한 아이의 상태는 검사들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쑥복이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아이의 상태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아이가 배변을 했다는 간호사의 말에 장모님은

‘변을 보면 일단 괜찮은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쑥복이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그대로 전할 용기가 나한테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판단이 틀리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에게 쑥복이의 사진을 보여 주고, 

다른 검사들을 해봐야 

자세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만 말했다.

그 누구도 마음속 깊이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갑작스럽게 큰 일을 겪은 우리들은 

서로가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아내 옆에서 밤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장모님이 병실은 너무 좁다고, 

집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으로 향했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한 상태로 집에 도착했고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서는 마침 영화 <아저씨>가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아내에게 

영화 대사를 모사하는 장난을 자주 쳤다. 

그중 하나가 <아저씨>의 원빈이 마지막 장면에서 

김새론에게 하는 대사.

“한 번만 안아보자”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중반부에 비슷하지만 다른 대사가 있었다. 

원빈의 과거 회상 씬이었는데

산부인과에서 

아내와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하는 대사였다. 


“안아보자, 우리 셋이”


쑥복이가 태어나기 전에 

저 대사로 아내에게 드립을 시전해야 했는데,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분명 나는,

쑥복이의 상태가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해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현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나만의 방식.

회피하고 외면하고 유예하는 내 특유의 성향은 

스스로를 절망과 비통함이라는 격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잠시 떨어뜨려 놓았다. 


멍하니 티비를 보는 동안

아내가 나의 신생아 시절 사진과 쑥복이 사진을 합성해서 보내왔다. 


‘내 딸이구나’


근데 딸이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실감 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어쩌면 자신을 지킨다고 작동한 방어기제가 

그날 저녁에 있었던 사건들 일체를 

잠시 외면하게 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딸의 출생이라는 큰 이벤트를 실감 못하고 

어떤 강렬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닐까. 


새벽 3시,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갔다. 

얼떨떨한 당혹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나는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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