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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09. 2022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었을지도..2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53

"아기는 나왔나요?"


내 몸은 분리된 것 같았다. 

작은 커튼을 쳐놓은 가슴 위쪽으로 

내 정신은 너무나 또렷했으며,

새우처럼 등을 굽히라면서 

수술실의 온 의료진이 들러붙어 내 몸을 반쯤 접어놓고 

등에 놓아준 마취주사 때문에 

커튼 아래쪽은 아무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분주한 건 역시 그쪽이었다. 


수술실에 들어온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고,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머리는 마취가 되지 않은 건지,

너무나 멀쩡한 정신으로 시간을 어림잡고 있었다. 

이쯤이면 아기가 나왔을 텐데, 

그러나 수술실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분만실은

적막, 고요 그 자체다.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영화나 다큐를 많이 찾아봤었다. 

미리 체험하기 쯤으로 그 공포를 줄여보자 하는 맘이었는데, 

내가 봤던 장면들은 이런 게 아니었다. 

분주한 의료진들 속에서 시끄러운 여러 말소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의사와, 

'할 수 있어요!' 라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간호사, 

그 맞은편에 마치 자기가 방금 애를 낳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글썽이고 손을 잡고 있을 남편, 

그리고 추노처럼 질끈 묶었지만 

몸부림에 갈기갈기 다 풀려버린 머리와

실핏줄이 다 터져가는 얼굴로 악을 쓰는 것. 

이것이 내가 상상한 나의 분만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분만실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를 안심시키는 의사도 간호사도, 남편도 없었다. 

나는 비명은커녕, 이 적막한 수술실 한가운데서 

내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까 신경 써가면서까지

마취된 몸으로 그 적막함을 고스란히 느껴야했다. 


'아,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

'아기가 죽었구나. '


그러지 않고서 이렇게 조용할 리 없다. 

그래 뭔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머리맡에 서있는 마취담당의에게 

눈을 위로 치켜뜨며 물었다. 


"아기는 나왔나요?"


자기가 이런 대답을 해도 되나 싶었는지 

잠시 망설이던 그 또는 그녀는 

(수술 마스크에 가려있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소심한 목소리로,


"네, 그런 것 같아요. "


죽었구나. 

내 아기가 죽었구나. 

나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아기가 나왔다니. 

아기가 나왔으면 나온 거고, 아직이면 아직이지, 

그런 것 같다니. 

아기가 죽었구나. 

그 순간 내 눈은 벽에 걸려있던 시계로 향했다. 

18시 55분. 

살아있다면 이 아기의 생시는 11월 17일 오후 6시 55분. 

아기가 죽었다면 

사망 추정시간은 오후 6시 50분에서 55분 사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아기의 생사를 혼자서 열심히 가늠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꽤 잔인한 일이다. 

수술 대기실에서 만났던 만삭의 여의사는 

더이상 수술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커튼 아래에서는 세명의 젊은 의사들만 서서 뒤처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병원에서 왔다고?"

"OO병원. 그 있잖아. OOO가 근처 OO대 병원에 있었던 거기 근처 병원." 

"아 나 거기 들어봤다. OOO도 거기 있었을 텐데."

"근데 왜 여기로 왔다고?"


이봐요. 나 여기 누워있다고. 

그들은 나를 방금 아기를 낳은 산모가 아닌, 

검안실에 누워있는 시체처럼 생각한 건지, 

마치 내가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내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차마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아 무기력하게 수술대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나는 

그들의 무례함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 수술방을 나갈 때까지 

아무도 나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토요일 오후라 회복실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중환자실 한쪽 구석으로 옮겨져 누워있었다. 


맥박이 좀처럼 올라오질 않아 시간이 필요했다. 

온몸의 감각은 없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더니 면회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하필 이 와중에 또 면회시간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가족들을 찾아 무리무리 흩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도 내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친정 부모님은 지금쯤 오셨겠지. 남편은 소식을 들었을까. 

많이 슬퍼하면 어쩌지. 

내 맥박은 안정될 리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더 중환자실 구석에 누워있어야 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임신하고 처음 받은 이 산부인과 산모수첩 다이어리가 임신 증표처럼 자랑스러웠다. 
응급수술로 아이를 낳기 일주일 전 완성한 초음파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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