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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08. 2022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었을지도..1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52

여느 예비부모처럼 행복하고 설렜던 우리

아이를 낳았다,

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실감하지 못한다. 

지독한 입덧 때문에 하던 일을 쉬어야 했지만, 

날짜가 지나면서 입덧도 잠잠해지고,

'쑥쑥 행복하게 자라라'는 뜻의 태명처럼, 

쑥복이는 정말로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태동이 갑자기 없었고,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이틀 정도를 일단 지켜만 보고 있었다.


PD였던 남편은 임신 기간 내내 바빴고, 

나는 늘 불만이었으며, 

전날 역시 늦어진 남편의 퇴근에 서러움이 폭발했으므로, 

나는 새벽까지 우느라, 남편은 그런 나를 달래느라 

늦게 자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 점심시간이 다 되어 일어난 우리는 

간단히 새우볶음밥을 먹었고,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을 배웅하겠다며 따라나섰다. 

'몸을 좀 움직이면 아이도 움직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배가 제법 나오면서부터 매일 입던 벤치코트를 또 입고, 

정류장 맞은편 횡단보도까지 따라가 인사를 나눴다. 

남편은 이날 길을 건너 뒤돌아봤을 때, 

내 몸보다 훨씬 큰 잠바를 입고 

해맑게 손을 흔들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마음 한편이 이상해진다고 한다. 


임신기간 내내 교복처럼 입고 다녔던 벤치코트, 매우 따뜻하고 아주 컸다


'좀 걸었는데도 태동이 여전히 없네?'

'달달한 음료로 깨워보자.'

커피우유를 하나 꺼내 마시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원하던 산부인과에 전화했다. 

다행히 나의 담당의가 주말 당직이었다. 

시간이 늦어도 되니 이상하면 언제든 오라는 말을 간호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이것만 마시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병원으로 가자.'

달콤한 음료에 꿈틀, 반응하던 아기가 요 며칠처럼 조용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주먹을 쥐고, 똑똑, 두드려봤다. 


"똑똑, 정말 대답 안 할 거야?"


'괜찮겠지. '

병원으로 나섰지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짧게 연락을 남겨놓았다. 

택시 타고 병원에 간다고, 아마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이때부터 괜찮은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상황이 마치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돌려도 

수없이 반복해서 돌려본 테이프처럼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 선명하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토요일 오후, 외래가 끝난 시간이라, 

출산예정일이 5주나 남아있었던 나는 

아직 해보지 않은 태동 검사실에서 담당의사를 만나야 했다.

그곳은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있는 층이었기 때문에 

좀 더 나이 많은 노련한 간호사가 나를 안내했는데,

태아의 심장박동을 살펴보기 위한 검사를 준비하며 그녀는

종종 이런 일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진정시켰고, 

나 역시, 

그다지 걱정되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괜한 말을 주고받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진짜다.

담당의사는 심장박동 결과지를 살펴보더니 

순식간에 심각해져서는, 보호자의 위치를 물었다. 

남편은 출근했고 친정부모는 멀리 여행 가셨다고 대답하자, 

남편 회사에서 어느 병원이 제일 가깝냐며, 

큰 병원 몇 군데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자기는 자리가 있는지 알아볼 테니, 

나에게는 당장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다. 


'무슨 자리가 있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떤 이유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가 그러라고 한다며, 병원이 결정되면 알려주겠으니 일단 출발하라 했다. 

그때부터 시간과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만,

그것이 얼마나 촌각을 다퉈야 하는 긴박한 싸움인지 

모르고 있었다. 


"큰 병원 갔다가 괜찮으면 여기로 와서 낳아도 되죠?"


라고 철없이 물어보는 나를 

구급차에 태우던 담당의사의 표정이 

왜 그렇게 난처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꽉 막힌 토요일 오후 시흥대로 위에서 

난생처음 구급차에 탄 채로 버스 전용차로를 달리며 산소호흡기를 들이마실 때까지도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구급차 안은 이렇게 생겼구나.'

'토요일 이렇게 꽉 막혔을 때 버스 차로로 쌩쌩 달리니까 기분 이상하네.'

예정일이 꽤 남았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도 상황 파악 못했던 나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도, 의사도 

나를 보기만 하면 보호자 어딨냐고 재촉했고, 

남편은 출근한 지 이제 막 한 시간 되었을 때쯤 

갑자기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와야 했는데,

주말 오후 서울 시내의 교통상황이 호락호락 할리 없었다.

응급실 한쪽 베드에 보호자 없이 누워 재촉당하고 있자니, 

부모님 빨리 모셔오라며 교무실에 불려 온 학생처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다들 보호자 왔냐고, 

자꾸 커튼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통에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다급해져 

남편에게 전화를 수없이 걸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보다 더 당황한 듯 한 표정의 남편이 도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린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었다. 

남편은 도착하자마자 불려 가 

응급수술을 위한 동의서를 작성하기에 바빴고, 

보호자가 오니 그제야 잘됐구나 싶었던 것처럼 

온갖 준비들이 시작되었다. 

간호사들은 내 옷을 갈아입히고, 소변줄을 꽂았다. 

응급환자는 부끄럼도 없는 줄 아는지, 

소변줄 꽂는 와중에도 커튼을 열고 닫고 해서, 

나는 뱃속 아기에 대한 걱정보다, 

수치심과 소변줄에 대한 공포가 더 클 정도로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그만큼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는 그럴 시간조차 없이 긴박한 상황이었음을.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건지, 

내가 누워있는 베드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앵글이었다.

누워있는 얼굴 위로 천장이 빠르게 흘러가는 장면. 

수술실로 가는 길 천장에는 환자를 안심시키려는 

각종 메시지가 적혀있었지만,

'괜찮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대략 그런 의미들의 그 문구들을 보는 순간, 

오히려,

'정말 내가 수술을 하는구나, 이렇게 준비도 없이!!!'

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도 손을 잡고 빠르게 달리는 베드를 따라잡으려 잰걸음으로 쫓아왔는데, 

갑자기 나를 데려가던, 젊은 남자 의사가 남편을 막아섰다. 


"여기서부터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수술이라는 것이 이렇게 시작될 줄도 모르고 헤어지면서 

뭔지 모를 두려움과 억울함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아기가 잘못된 걸까. 

뭐가 잘못된 건가. 

너무 무서웠고,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자꾸 되짚어보면서 수술 대기실에 누워 훌쩍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까 그 남자 의사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이는, 

배는 나만큼 나온, 

내게 아무 일이 없었다면 예정일이 나와 비슷했을 것 같은 

여의사가 수술복을 입고 나타났다. 


"태동이 없었고, 심박을 확인해보니 거의 심장박동이 없어서 

지금 응급수술로 아이를 꺼낼 거예요. "


친절한 것 같지만 하나도 친절하지 않은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끌려가다시피 수술실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건지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아이를 꺼내러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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