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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01. 2022

나는 내가 너무 밉다

나는 내가 너무 밉다 3

아파하는 아이와 나는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나서야 

담당의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도 나도 밤새 울고 힘들었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와서


"아이가 많이 아파해요?"


라고 묻는 의사가 미웠다. 

안 아팠으면 그렇게 밤새 진통제를 찾았겠어요?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설명해야 했다. 

보호자가 이성을 잃으면 더 이상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 같지 않다. 분명 힘들어한다. 

어디가 아픈 게 틀림없다. 

이대로 집에 가면 참다 참다 

다시 응급실로 와야 한다. 

퇴원 전에 피검사로 볼 수 있는 거 다 확인하고

골절이 쉬운 아이니 

전신 엑스레이까지 확인하고 싶다. "


하나하나 설명하며 최대한 자세하게 요구했다. 


"담당 교수와 의논해 보겠다."


밤새 당신이 와서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렸는데,

그 긴 시간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짧은 답변만 남긴 채

담당의는 다시 떠나버렸다. 

내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된 걸까. 

내 말을 이해한 걸까. 

내가 제대로 말한 게 맞나.

여전히 괴로워하는 아이 옆에서 

한없이 초조해하고 있을 때

담당 간호사가 왔고 

검사 오더가 떨어졌다고 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얼른 아이를 데리고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검사는 전혀 없었다.

내가 모르는 골절이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었는데

폐에 이산화탄소가 찬 건 아닌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피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염증이 있는 건 아닌지 채혈로 확인해야

아이가 계속 아파해도 염증 가능성을 제외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가 원한 검사는 없고

간단히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세세하게 확인하고 퇴원하고 싶다는 내 말은 

하나도 전달이 되지 않았던 걸까. 

전문가로서 보기에 엄마인 내 말은 

전혀 들을 가치가 없던 걸까. 

밤새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였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지만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퇴원을 받아들였다. 


집으로 오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 달리

연우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평소 컨디션이 떨어질 때마다 먹였던 진통제를 줘도

좀처럼 아이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아

답답함만 커져갔다. 

그렇게 이틀 정도 더 지났을까. 

기저귀를 가는데 아이의 한쪽 다리가 이상했다. 

연우의 왼쪽 허벅지가 기저귀 위로 볼록하게 나올 만큼

단단하게 부어올랐고, 그 부위엔 열도 나고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어 재택의료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골절이 의심된다, 

병원으로 바로 오셔야 할 것 같다."


아...결국... 예상대로 되는구나... 

그렇게 골절을 걱정했는데, 

한 번만 보고 퇴원하자고 했는데...

그동안 몰라줬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이상 없다고, 이렇게 아플 수술은 아니라고,

지켜보라는 말만 반복했던 

담당의사의 얼굴이 떠올라

후회와 원망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무너져가는 멘탈을 겨우 부여잡고 

아직 퇴근 전인 남편을 급히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외래가 끝난 시간, 응급실로 향했다. 


결과는 역시 골절이었다. 


"무릎 위 뼈가 부러졌다."


자세한 건 정형외과에서 와서 얘기해주고 

깁스를 해줄 것이라는 응급실 당직의의 말을 들으며 

애써 잡고 있던 이성이 끈이 떨어져 버렸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누군가는 골절 가지고 뭐 유난이냐고,

그나마 골절이어서 다행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울지 못하는 내 아기가 뼈가 부러져

고통스럽다고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걸 알지도 못한 엄마라는 내가 너무 

밉고 절망스러웠다. 

아이가 표현하지 못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울 수 있었다면

뼈가 부러졌을 때, 아니 뼈가 부러진 후라도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을텐데,

그럼 누구 하나 들여다봐줬을 텐데,

혼자 조용히 괴로움에 몸부림만 쳐야 했던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걸 전혀 모르고 답답해만 하던 내가 너무 미워서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엄마인 나도, 의사들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전신 엑스레이를 봐달라고 했을 때 

한 번만 봐줬더라면, 

제대로 봐주지 않는 의사에게 내가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언성이라도 높여서 

어떻게든 확인을 하고 집에 왔더라면. 

이렇게 며칠 동안 아이를 고생시키진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웠다. 

허벅지부터,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게

깁스를 채워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누워서 꼼짝 못 하는 아이에게 

깁스는 욕창이 더 걱정되게 만들었다.  

천장을 보고 일자로 누워있으면 

사람의 폐는 납작해지고 접히기도 한다. 

그러면서 호흡 기능까지 떨어지면 큰 문제가 되므로

와상환자에게 자세 변경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통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아기에게 

자세 변경은 불가능했다. 

너무 마른 다리에 무거운 깁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 변경을 시도하거나 아이를 옮기다 

자칫 깁스 무게 때문에 고관절이 빠지거나 

오히려 반대쪽 다리가 쳐지면서 부러질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연우의 등에는 땀이 찼고

깁스 쪽으로 오줌이 샐 수 있기 때문에 

기저귀를 갈 때마다 깁스와 다리 사이에 

수유패드와 팬티라이너를 접어 붙여주는 작업을 했다. 

아직 붙지 않은 뼈 때문에 행여 아이가 아플까봐

손끝을 떨며 조심조심 붙이는 작업을 마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그 몇 분 새에 지쳐버렸지만,

힘이 든다고 느껴서도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 

자꾸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던 그 밤이 떠올라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때의 내가 너무 밉다. 

연우의 입원을 결정해서, 

언제 골절이 된 건지도 모르고 

연우를 지키지 못해서, 

연우가 힘들어할 때 

아무것도 모르고 도와주지 못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사에게 따지지도 않아서, 

나는 내가 너무 밉다. 


하나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골절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으므로. 

그때 내가 다르게 했다면 연우가 지금 내 곁에 있지 않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그 까만 밤이, 

막막하고 두려웠던, 너무 답답하고 외로웠던 그 밤이,

연우에게 두고두고 아픔으로 남진 않았을까,

내 가슴에도 피멍으로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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