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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04. 2022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미국의 어느 의사가 쓴 칼럼의 제목이다.

의사는 추락으로 생명이 위험해진

아이를 구해냈지만,

뇌손상으로 심각한 후유 장애를 얻게 된 아이와

그 아이를 24시간 간병하게 된

아이의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보며

이런 의문을 가졌다.


"네가 행복을 아는지 확신이 안 간다.

다만 고통을 분명히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구한 게 기쁘니?

너의 엄마와 할머니는 너를 돌보느라

몇십 년 희생해야 한다.

너를 구한 걸 용서할 수 있겠니?"


깁스 후에 잠시 안정을 찾는 듯 했던

연우의 컨디션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의식 없는 아이의 고통은

평소보다 높은 맥박수로 가늠해 볼 뿐이다.

열이 없는지, 부러진 곳이 없는지,

더워서 호흡이 어려운 건 아닌지,

피검사로 염증 수치를 보고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

폐에 음식물이 흡인되었거나

이산화탄소가 차서 뿌옇게 보인다면,

호흡이 힘들어서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올라가는 것일 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가능성을 하나하나 줄여나가는 것뿐이다.

이 가능성 중 하나라도 걸리는 게 없다면


"아이가 어디가 불편한가봐요"


라는 아주 막연한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늘리는 것 말고는

병원도, 부모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골절이 우리 집에 가져온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누워만지내는 환자에게 골절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두려운 존재다.

쓰지 않는 뼈는 약해지고 햇빛을 보지 못한 몸에서는

비타민 합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칼슘 배출의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부러지기 쉬운 몸을 만들어낸다.

말로만 듣던 그 위험한 골절을 막상 겪으니,

뼈가 부러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 변경이나 폐기능 유지를 위한 재활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면서,

연우는 호흡도 불안정해지고,

맥박은 늘 알 수 없이 높았으며,

먹는 것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을 게워내길 수차례였다.

탈수를 막기 위해 먹는 수액 400ml를

아이가 부담되지 않게 한 방울 한 방울씩

다섯 시간이 넘도록 밤새 먹였다.


새벽 한시, 세시, 다섯시.

석션을 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맥박을 살피면서, 두 시간마다 다시 수액을 데우고.

4년 차인 간병 중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매일 밤샘을 하며,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으로 아이 옆에 앉아

멍하니 까만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밖에 아무도 없는 거리어둠이 순식간에

내 아이를 덮쳐버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금세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줄타기를 하는 기분.

매일 매순간 우리 옆에 바짝 붙어있는

죽음이란 놈이 더 이상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루 종일, 그리고 다시 밤새 감시하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매일이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내 옆에 누워있는 아이가 남들처럼 웃기를,

목놓아 울어보기를,

눈을 깜빡여보기를,

스스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있어줄 수 있기를,

고통스럽지 않게만 옆에 있기를,

줄이고 줄여 아주 소박한 꿈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아이 옆을 하염없이 지켜내다가도,

아이가 괴로워하는 이 날들에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그저,

아이도 나도 마냥 견뎌내야 하는

그 깜깜한 시간들에

나는 아이에게 수백 번도 더 용서를 구한다.

너무 크게 말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조용히 아이의 귀에 읊조린다.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나는 아주 처음,

너를 만났던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이랬더라면,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을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무력감과 후회.

나를 놓아주지 않는 죄책감을 어깨에 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

석션을 하고 먹이고 닦이고의 연속.

오늘도 치열하게 너를 지켜낸 나를 자책하면서

또 사죄한다.


"오늘도 너를 살려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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