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18. 2022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이의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앞으로 병원 올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연우 손 한번만 잡아주세요. "


에둘러 말했지만 

한 두 달 사이에 우리를 너무 자주 만났던 

정형외과 교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해."


4년째, 처음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만난 날부터 

언제나 차가웠던 그가 

오늘은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 

짧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듣지 못하는 연우지만 아마 그 순간만큼은 

그의 진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진료실을 나왔다. 

오늘 정형외과 외래를 마지막으로 

연우의 모든 외래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과 함께

맥없이 수술장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그날 이후,

연휴 내내 나와 남편은 참 많이 울었다. 

아이의 생사를 두고 부모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 앞에서 

우리는 지금 이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차마 입 밖으로 서로의 생각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껴안고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끓는 부모의 눈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다섯 살짜리 아기는 

의료진들이 말하는 연명치료 중단 요건에 

퍼즐 빈칸 채워가듯 하나하나 맞춰가고 있었다. 


2022년 2월의 첫날. 

결국 나와 남편은 연우의 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어떻게든 가는 시간을 막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막는다기 보다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처럼  아주 약하디 약해지고 있는 

연우의 생명을, 내 아이와의 시간을, 

여기에 조금 더 붙잡아 놓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바람이 이기심으로 느껴질 만큼

연우의 몸은 더 이상 버티기를 힘들어하고 있었다.

변형된 뼈 때문에 연우가 겪을 고통을 감안해

마약성 진통제를 먹이고 있었다. 

강한 진통제로 어느 정도 고통을 줄여줬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흡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산소발생기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버티질 못했고

산소발생기를 켜놓아도 한번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84, 75, 66, 44까지.

순식간의 연우의 얼굴은 점점 보랏빛이 되었다가 

이내 새까맣게 얼굴의 모든 빛이 죽어갔다.

기도에 연결된 튜브가 막힌 건 아닐까 새것으로 갈아도 보고,

인공호흡기나 산소 발생기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나면

작은 풍선 같은 주머니가 달린

수동형 인공호흡기를 연우의 기도에 연결하고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떠올려가며

구령에 맞춰 풍선을 눌러서 바람을 짜 넣어 주었다. 

25, 48, 53, 79, 81, 81, 82

안정적인 수치인 92를 넘어서기까지 

연우의 호흡은 더디게 더디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던 아이는 

조금씩 얼굴빛이 돌아오고 이내 90 문턱을 넘어서면

이제야 핏기가 도는 얼굴은 홍조처럼 붉은 기가 돌며 

'이게 생명의 징후구나.'

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긴장과 긴박함으로 가득한 뒤에는

아이를 살려냈구나

하는 안도보다는 

'내가 또 아이를 살려버렸구나,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 아이를 내가 또 살리고 말았어.'

라며 죄책감에 휩싸여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직은 안돼서,

조금만 더 옆에 있어줘, 엄마가 용기가 없어서 너무 미안해"

아이 손을 잡고 울고 또 울며 용서를 구했다. 

죽음의 연기. 

나는 이것이 단지 내 아이의 죽음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호흡 능력이 너무 떨어져 버렸고, 

안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제 기능을 못했던 소화 기능도

점점 그 힘을 잃어가 

연우는 80 ml도 겨우 될까 말까 하는 환자식을 

두 시간이 넘게 먹으며 그 마저도 게워내는 일이 다수였다. 

수술장에서 변형이 확인된 골반뼈는 너무 얇았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만 잘못 움직이다 뼈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 뼈를 잇는 수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연우의 뼈들은 얇아지고 약해져 있었다. 

더 이상 조금의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잡혀있던 모든 병원 진료를 취소했다. 

제대로 먹고 소화시키는 일이 어려워 점점 말라가던 연우


욕심같아선 내가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으니 

당장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입원시켜 

호흡이 왜 안 좋은지 이유도 찾아내고 

소화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구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병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이 상주할 수 있는 상황.

내 욕심으로 아이를 살려두겠다고 혼자 데리고 들어가서

남은 날이 얼마 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시간을 

주삿바늘과 온갖 검사들로 채울 수는 없었다. 

심폐소생술조차 어려운 내 아이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맞이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우리는 집에서, 

(우리 생각이지만) 연우가 가장 편안함 느껴하는 연우의 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아이의 마지막 시간들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하는 것이라면 뭐든 자신있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해내고,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연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 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느 부모처럼 마음 같아선 뭐든 해주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 

내가 뭔가를 하면 할수록 

연우의 힘든 시간을 길어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연우를 오랫동안 봐온 소아완화의료팀 교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연우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연우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거에요"


모든 반사와 반응이 없는, 말 그대로 의식 없는 아이지만

고통만은 느낄 수 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고통도 느끼지 않도록

아무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그녀의 말속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결국은 엄마인 내가, 

세상 그 누구보다 이 아이를 사랑하는 내가,

아이를 보내줘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어진 아이를 위해

완화팀 교수와 전문의가 우리 집으로 와 주었고,

연우의 호흡부터 몸 상태, 변형된 뼈의 모습,

여전히 전혀 반응 없는 동공도 근육도 모두 살펴봤다. 

결과는 합격. 

연우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요건에 모두 들어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연우의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연우가 더이상 힘들지 않기를.


이것이 나와 남편이 바라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남들처럼 되기를 바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꾸만 생겨나는 연우의 불편함들을 

좀 덜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부모인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뿐이다.


마지막 외래를 마치고 나서는 길, 

알 수 없이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조금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안아 들고

이 병원을 참 열심히도 다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마지막 외래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에

남편과 나는 연우의 체중을 확인했다. 

연우의 몸무게 7.6kg.

조금도 체간 지지가 되지 않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아이기 때문에 

신생아 아기들이 누워서 몸무게를 재는 곳으로 

아이를 옮겨 키와 체중을 확인했었다.

이제는 병원에 올 일이 없으므로 

집에서는 알기 어려운 연우의 체중을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7.6.

단순한 숫자 두 개가 가슴을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연우는 세 살 때도, 네 살 때도, 그리고 다섯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7킬로그램을 조금 넘을 뿐이었다. 

2년 전보다 조금도 늘지 않은 몸무게. 

연우가 얼마나 못 먹고 있고, 

연우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숫자였다.


'그래, 이거 봐. 잘한 결정이야. 

연우를 위한 결정이잖아. '


조금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 더 연우의 현실, 우리의 예정된 이별을 확인하고 돌아서야 했다.

지난 4년,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가지고 이곳을 올 수 있었던 

그날들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이제는 희망보단 준비가 필요한 때. 

무거운 발검음으로 마지막 외래를 마쳤다. 


나는 엄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기로 했다. 

나는 내 아이의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전 16화 나의 최악은 너에게 최선인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