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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19. 2022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안녕을 준비하며

봄햇살이 연우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막 두 시간에 걸친 수유를 마치고

연우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아까운 내 새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아까운 내 새끼.

나는 너를 정말 보내줄 수 있을까.


순간 흔들리는  엄마의  마음을 눈치챈 걸까.

강직이 올 때처럼 연우가 온몸에 힘을 주었다.

얼굴이 시뻘게졌고

갑자기 기도에 연결해둔 인공호흡기가 빠져버렸다.

그리고는 기도에 꽂아둔 튜브에서

방금 먹인 환자식이 쏟아져 나왔다.

늘 연우는 먹는 양의 대부분을 게워내기 일쑤였지만

식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 기도로 올라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폐로 넘어가 흡인이 된다면

폐렴이 생겨 연우에게 치명적일 것이었다.

무언가 내 뺨을 한 대 후려갈기는 기분이었다.

여태 연우가 토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인공호흡기를 밀어낼 정도로 힘을 주고,

기도에서 방금 수유를 끝낸 환자식 뿜어져 나오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우가 정말 힘든 거구나.


망연자실했다.

내가 내린 결정을 확인시켜주듯,

연우는 자꾸만, 계속해서,

온몸으로 괴로워했다.

강한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스스로 대변을 보지 못해

이제는 이틀에 한 번씩 관장을 해줘야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지도 못하는 양의 환자식을 자꾸 게워내

탈수가 올까봐 먹는 수액으로 수분을 보충해주고 있었다.

그저 물같은 액체이지만 이마저도 한 봉지를

콧줄로 넣어주는데 두시간이 넘게 필요했다.  

방광에 쌓인 결석들과 요도로 빠져나오는 칼슘 가루 때문에

소변을 볼 때마다 괴로워했으며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몸은

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점점 마르고 더 약해지고 있었다.

옷이며 얼굴이며 구토로 범벅이 되고도

울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눈빛만 보이는 내 딸.

나는 이제 정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뿐이라는 걸

다시 실감하면서 연우의 몸을 닦아주었다.

기도로 넘어갔을지 모르는 환자식을 빼주기 위해

석션도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흐르는 눈물을 꾹꾹 누르며

아이 옆에 메모지를 꺼내 놓고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1. 편지 써주기

2. 매일 사진이나 동영상 찍어놓기

3.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대신 사랑한다고 말하기

4. 하루에 열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기


5. 스킨십하기

6. 가족사진 찍기

7. 여행 다녀오기

8. 놀이공원이나 꽃구경 가기

9. 울지 않기


언뜻 보면 나의 버킷리스트 같은 이 목록은

남은 시간 동안 연우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연우가 떠나는 날 전까지

내가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이었다.

내 생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떤 것들을 써놓을까.

내가 연우라면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을까.

고민 고민하며 욕심을 내서 한글자씩 적어 내려가면서도

의료진과 결정한 이별의 순간이 오기 전에

연우가 떠나버리면 어쩌나하는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이중에 몇 개나 해나갈 수 있을까.

부쩍 악화된 연우의 상태를 떠올리며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할까.

나 자신이 너무 밉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괴로웠다.

연명치료 중단 날짜가 잡히고

연우와의 이별이 결정된 이후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너무 무섭고 아팠다.

이때의 나는 늘 궁금했다.

슬픔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면,

눈물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면,

준비되지 않은 이별과

준비해야만 하는 이별 중 어느 것이 더 아플까.

다시 생각해도 나는 연우를 아무 준비 없이 수술장에서

잃을 뻔했던 그날이 참 무서웠다.

하지만 잎새 한 장 한 장 떨어져 가는 걸 바라보는 심정으로

연우와의 남은 날들을 세어가며 준비하는 것 역시

더 낫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남은 시간이 아까워 우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떠나는 건 연우인데, 그 사이 고통스러운 것도 연우인데

결정을 한 내가 우는 건 괘씸한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의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때마다 노래를 불러주고 애써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세수를 하다가

아이 생각만하면, 아이를 보낼 생각만하면

울컥하고 터져버리는 울음까진 막을 수 없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때로는 화장실 문을 굳게 닫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이 몰래 숨어서 울 때가 많았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 연우를 어떻게 보내지

막막하고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이별의 날을 실감하면서 두렵고 또 두려웠다.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싶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돼 있으니

그냥 이대로 연우를 곁에 두겠노라

연우 생이 자연스럽게 다할 때까지 조금만 더

연우와 함께하겠노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야위어 가고 부쩍 지쳐있는 연우의 얼굴을 바라보면

차마 내 욕심을 부려 우리 곁에 더 있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먹는 것, 배설하는 것,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거나,

울거나, 싫다고 표현하는 것.

어느 하나 할 수 없는 나의 연우가 이토록 힘들어하는데

내가 보낼 용기가 없다고 해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마냥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우가 더는 힘들지 않기를.


주문처럼 되뇌고 되뇌었다.

우리가 바랐던 단 하나만 생각하기로 하고

뒤따르는 불안과 두려움은 최대한 무시하려고 애썼다.

연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연우를 위한 거니까,

힘들어하고 있는 연우만 생각하자.

그리움과 슬픔은 내가 감당하면 되니까

연우만 편안하게 해주자,

연우만 생각하자.  


하지만 어느 가수의  유명한 노랫말처럼,

이별까지 사랑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사랑한 건 연우지,

연우와의 이별마저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은 시간이 아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사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소중한 추억들로 채워가는 것뿐이었다.


그래, 어떻게 너와의 이별까지 사랑하겠니.

이 이별이 싫은 것도, 슬픈 것도 당연하겠지?

그치만 사랑하는 너를 위해 우린 참아낼거야.

사랑하는 네가 편안해질수 있도록 우린 견뎌낼거야.

사랑한다 우리 연우. 엄마아빠가 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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