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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0. 2022

킥보드를 탄 소녀

안녕을 준비하며

우리 맘도 몰라주고, 참 화창한 봄이었다.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부부의 심정과는 너무 대비되게

봄 햇살은 매우 따스했고 

아파트 단지에는 꽃나무마다 꽃봉오리들이 가득했다. 


꽃구경 하기. 


골절 위험이 커진 연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웬만한 외출은 참고 참았지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연우의 봄을 

이대로 집안에서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예쁜 꽃 같은 내 아이, 

연우에게도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꽃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우리의 여느 외출이 그러했듯, 

인공호흡기와 산소발생기, 산소포화도 모니터까지.

짐을 주렁주렁 달고 집 밖으로 조심스레 나섰다. 

1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순간에도, 

그리고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면서부터도, 

연우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해서, 

남편과 나는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하고 

자꾸 멈춰서 석션을 해줘야 했다.

괜히 나온 것일까. 

우리만 좋자고 나온 것은 아닐까. 


큰맘 먹고 연우를 데리고 나와도

우리 부부는 언제나 그 짧은 순간도 맘껏 즐기지 못하고 

소리도 못 내고, 표정 변화도 없이,

어떤 표현도 없는 아이의 마음을 가늠해보며

아이에게 괜한 불편함을 더 해준 것은 아닐까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얼마 가지도 못하고 

고작 아파트 단지 안을 조금 도는 걸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연우의 가래와 침이 자꾸 역류해서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석션을 해야 했다. 

그래도, 적어도 남편과 나는 

이 순간을 우리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도 남들처럼 함께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차고 행복해했다.


"연우야 꽃이야, 예쁘지?"

"연우야 이것봐봐, 정말 예쁘다. "

"우리 연우처럼 예쁘네~"


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 

떨어진 꽃송이를 주어서 손에 쥐어도 보고

꽃내음을 맡을 수 있게 코에 대어도 보고 

이 순간을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아이에게 자꾸만 말을 걸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딱 한순간만이라도 

이 좋은 느낌을 너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드러운 봄바람이 꽃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는데 

분홍빛 물결은 내 가슴속을 차갑게 할퀴며 스쳐갔다. 


너무 예쁜 내 아이.

봄꽃처럼 예쁜 우리 연우. 


유모차에 누워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는 아이를,

아니 볼 수도 없어 눈만 뜨고 있는 아이를,

꽃가지 옆에 두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때였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킥보드를 탄 연우 또래의 여자아이가 

내 카메라 렌즈 속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내 아이 뒤로

유모차 속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며 

순식간에 지나쳐간 소녀. 

힘차게 발을 구르며 스쳐가는 그 소녀와 

기운 없이 유모차 안에 누워만 있는 연우가 대비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꽤 자주 그랬다 나는.

아파트 단지 안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들마다 

손에 쥐고 신나게 달리던 알록달록한 킥보드. 

그것을 볼 때마다

이 나이 때 내 아이는 가져보지 못하는 

즐거움, 자유로움이 떠올라 매번 마음이 아팠다. 


하필 이 순간에, 

하필 내 아이 뒤로 쌩하고 지나가다니.  

고작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우리 연우를 저렇게 바라보지.

우리 연우도 저렇게 킥보드를 탈 나이인데


유치한 맘에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면서

아무 죄 없는 그 소녀가 괜히 얄밉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내 킥보드 탄 소녀가 포커스에서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시선은 다시 연우에게 집중되었다. 

누가 뭐래도, 어떤 아이들을 보아도,

내 마음속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 이연우.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우리의 이 소중한 순간순간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 모든 시간이 끝나고 다음에 태어나면 

우리 연우도 꼭 저런 킥보드도 타고 

재밌는 놀이도 많이 하면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맘을 담아 다시 우리 연우를 사진에 담아 놓기로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만, 

남들처럼 평범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이 모든 순간을 나는 무엇보다 사랑해. 

언젠가 우리 연우도 마음껏 뛰놀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봄꽃같이 예쁜 내 아기, 우리 연우,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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