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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지금 이 순간으로, 기억할게

안녕을 준비하며

마지막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연우와 이별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그럴수록 우린 더 예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지금 이 시간이 마지막이기에

이 순간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했다.


짧은 외출에도 짐이 많은 우린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큰 차를 빌려야 할 정도로 

더 많은 짐을 챙겨야 했다. 

하루, 이틀 머물기로 한 숙소지만

마치 병원처럼, 그리고 언제나 연우가 머무는 집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와 산소발생기, 

석션기는 휴대용과 가정용으로 두대.

그리고 식염수와 멸균장갑과 석션 용품들.

산소포화도 모니터와 연우의 환자식들, 

그 환자식과 약을 콧줄로 넣어줄 때 필요한 주사기들. 

하루 세 번 약과 먹는 수액, 

언제 토할지 모르니 옷은 다섯 벌 이상. 

기저귀와 물티슈도 넉넉하게, 

연우 수유 중에 모션베드 역할을 해줄 바운서,

언제 생길지 모르는 위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해열제, 드레싱 용품, 예비 콧줄, 예비 케뉼라,

(케뉼라:기도와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튜브)

거즈들, 해열제, 밴드, 연고, 수동형인공호흡기 등등.

우리 부부 짐 빼고 연우 짐만 챙기는 데에도 

하루 반나절이 꼬박 필요할 정도였다. 

작은 포스트잇에 연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적고

하나씩 빨간 줄을 그어가며 짐을 챙기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여행'이라는 네 글자만 떠올려도

괜히 설레고 흥분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우 짐 챙기는 중, 아직 반 정도 챙긴 상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우리만 머물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독채펜션에 도착했다. 

연우 간병 4년 차인 남편과 나는 손발이 척척 맞아

내가 연우의 수유를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기계들을 옮기고 전원을 연결해서 

연우에게 최대한 집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연우가 힘들지 않도록.


여행을 와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유일한 목표는 이 한자지였다. 

최대한 집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도록 루틴을 깨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와 여행을 와준 연우에게 

우리 부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대단한 여행지도 아니었고

여행지의 유명한 맛집이나, 

다들 찾아가는 관광지를 방문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숙소에 머물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수유하고, 석션하고, 

약 먹이고 기저귀 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뿐이었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고 움직이면 

연우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물론 매 순간 즐거울 순 없었다.

우리 부부의 맘 속에 따라다니고 있는

마지막

이라는 단어는 

자꾸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더 이상 연우가 내 옆에 없을 날들을 상상하다가

겁이 나고 서러워져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연우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연우와 함께 하는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날들. 


정해진 이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지금, 이 순간, 행복하는 것뿐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그 말에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썼다.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즐기며 행복해하기로, 

언젠가 함께 했던 우리를 떠올리면 

슬픔이나 눈물 대신, 

행복했던 이 순간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이 순간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어놓고 

집에서와 같은 날들을 보냈다. 

별거 없지만 아주 행복했다. 


나는 생각했다. 

연우와 남은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고

이 시간에 웃을 수 있고

그리고 정해진 날까지 최선을 다해 버텨주는 연우가 있어

운이 참 좋은 거라고.

사랑하는 이와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갈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알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팠던 연우 대신, 

헤어져야 했던 우리의 슬픔 대신, 

아주 사랑했던, 너무 행복했던 

이 순간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사랑스런 나의 아기, 우리 연우야.

너도 이순간 이모습으로 우리를 기억해주겠니.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말고, 

행복했던 우리로 우리를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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