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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처음처럼, 마지막까지도

안녕을 준비하며

가족사진 찍기.


목록에 적어둔 가족사진 항목을 보며 

고민이 많아졌다. 

최대한 연우가 편안한 상태에서 촬영할 수는 없을까.

골절 위험이 커진 상태에서 

가족사진 촬영을 하자고 

연우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모험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꼭 우리가 함께 하는 모습을 남겨놓고 싶었다. 


사실 우리에게 가족사진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우의 첫 생일, 

아이를 아프게 나았다는 죄책감에 

미역국이나 연우의 생일파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연우와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었다. 

그때 찍은 아기 같은 연우의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간병도 육아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언제나 동동구르던 우리가 생각나

웃음이 나기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많이 야위었지만

3년 전 사진을 보면 지금은 부쩍 자라 

제법 소녀 티가 나는 연우가 대견하기도 했다. 

한살 생일이 되던 때 찍었던 우리의 첫 가족사진


그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우리, 

처음 막 우리 세 식구의 삶을 시작할 때,

이 아이를 우리가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하던 때였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세 식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들을 남겨야 할 때였다.

어쩌면 이제는 조금 덤덤히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 

너무 애틋하고 매 순간이 아까운 우리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이번에도 처음 우리 사진을 찍어준 작가님께 

연락을 했다. 

sns로 검색해가며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우리의 첫 가족사진을 맡겼던 사진작가님.  

인상도 좋고 sns 홍보는 센스 넘쳤으며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것 같은 

아주 선한 눈빛의 작가님이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그 마음 그대로 

우리를 사진에 정성스레 담아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사진이 될 이번 촬영도

꼭 작가님께 부탁하고 싶었다. 

스튜디오로 연락을 해 조심스럽게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지난번 촬영으로 

누구보다 연우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작가님이기에

흔쾌히 방문 촬영을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촬영을 약속한 날, 

아무래도 스튜디오 같지 않고 

각종 의료기기에 처치 용품들까지 

어수선한 우리 집이 성에 차진 않았지만

우리가 이 사진을 찍으려는 이유를 다시 떠올렸을 때

더 이상 지금 우리의 모습에 억지로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잠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작가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수선한 모습이긴 하지만, 

연우가 지낼 마지막 집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연우와 함께 했던 순간이 그리워질 때 

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있는 모습 그대로 담아주셨으면 해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픈 내 설명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첫 촬영 때는 체간에 힘을 줄 수 없어 

앉지 못하는 연우를 위해

집에서 베개를 가져가 연우 엉덩이 밑에 받쳐주었다. 

연우는 그마저도 불편했던 건지 

촬영 도중 자꾸만 변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경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우가 늘 누워있는 침대에서 

몸을 억지로 일으키거나 세울 필요 없이 

편안하게 누워 촬영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주는 작가님이

은인처럼 느껴져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습한 날씨 때문인지 

연우는 침을 자꾸 흘리고 가래가 끓고 경기까지 했다. 

평소처럼 예쁜 모습으로 남기고 싶은 사진이었는데

연우의 컨디션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를 너무 잘 파악한 작가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따로 포즈를 취할 필요 없으니 

평소처럼 편하게 연우를 보살피라 했다. 


이렇게 찍으면 사진이 잘 나올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촬영을 끝내고 받아본 원본 사진들에는

정말로 내가 원하던 모습이 담겨있었다. 

연우와 지내는 그저 그런 우리의 일상.

석션을 하고 호흡이 떨어져 아이를 걱정하는 남편과 나.

남들과 다르지만, 조금 많이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예쁜 나의 연우.

지금은 볼 수 없는 연우의 인공호흡기며

산소포화도 모니터, 석션기까지. 

연우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처음 연우와 사진을 찍을 때 기분이 어땠더라...


그냥 조금은 들뜨고 그렇지만 막연히 불안하고

연우가 자꾸만 힘들어해서 초조했던 것 같다. 

이번 촬영 내내 내가 느낀 감정은 

내가 연우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뿐이었다.

늘 내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던 연우와의 이별.

정작 이 시점에 다다르니

오히려 그때와 같은 불안과 두려움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내가 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왜 나만 이런 시련을 겪을까.

라는 의심보다는

어떻게 하면 연우와 남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연우가 하루빨리 편해졌으면 좋겠다,

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평생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만큼

이 아이룰 사랑한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온 마음 다해 연우를 사랑한다는 감정뿐이었다.

 

연우와 함께한 4년 간의 여정이 끝나간다. 

우리 가족의 마지막 가족사진 촬영. 


"처음처럼, 마지막 이 순간까지도

우리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 연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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