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단상
인생은 정말 별거 없는 거 같아요. 어떠한 직업도 돈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상태가 되고 엄청난 불안과 고통을 지나고 나니, 그 삶이란 것을 단지 살아가는 것에만 큰 의미를 두게 되는 거예요. 먹고 자고 생각하고의 반복...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예요. 그러다 또 죽음도 목도하고 보니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아 인생 정말 별거 없구나, 말 그대로 부질없구나. 어른들이 인생 부질없다는 말씀을 종종 하실 때면 이 세상에 취하고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시나 웃어넘겼어요. 그런데 지금 딱 이 시기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생살이에 운이 받쳐주던 악착같았던 성공하고 돈을 많이 모아봐야 죽음은 면치 못한다. 착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죽음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각자에게 정해진 정확한 시간에 닥쳐온다. 물론 그 속에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은 그래요. 건강하게 사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로는 건강하게 살면서 살아있는 서로에게 아침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 그 작은 것 하나가 삶에서 최상의 실천이라는 사실이에요. 아침마다 맑은 햇살 속에 창밖에 서 있는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처럼. 매일 아침 그렇게 작게 지저귀는 것이 최고의 삶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절 때면 부모님은 저희를 데리고 어르신, 사촌, 친구, 동생을 찾아다니며 짧게나마 얼굴을 비추고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어린 저로서는 귀찮고 형식 치레 같아 없애버려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소식이 희소식. 알아서들 잘 사는 것이 인간인데 왜 그렇게 굳이 귀찮게 찾아다니나. 하지만, 이제야 이것이 인간이 사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깨달았어요. 서로에게 그렇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모범적인 태도였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어요. 몇 달 뒤 명절마다 찾아봬 인사를 드렸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만약 잘 계시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번 명절은 건너뛰자고 생각했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많은 후회를 했을 거예요.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지만,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듯, 인간을 단지 우주의 쳇바퀴 속에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부속품 하나인 것처럼 소모가 되어버리면 탁- 빼버리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어떻게 빠져나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악착같이 붙잡고 있었던 것들에 힘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에요.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고집을 부리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조금 느슨하게 저와 제 인생을 그 고통 속에서 풀어 주고 싶어요. 고정관념을 깨서 편협한 관점을 바꿔보고 싶어요. 누구보다 더 좋은 삶은 없어요. 지금 내 삶 자체가 저에게 가장 소중해요. 지금, 이 순간 자체는 온전히 나의 것이에요. 이 한정된 시간을 나만을 위해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현명한 거 같아요. 어떤 물질에도 어떤 욕구에도 과소비하려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요. 우리들 사람이 중요하고 아침마다 눈을 떠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고 초록빛 나무 밑에서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고, 마스크를 살짝 내려 폐 속을 상쾌하게 흐르는 자연과 도시의 냄새를 맡고. 언젠가 겪었던 소중했던 기억을 잠깐 떠올려 보는 것이. 일상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