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이 취미인 자의 변명
낯선 만남의 자리.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서로 취미를 묻는다.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말한다.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이 흥겹게 꼬리를 문다. 잠깐 생각에 잠긴다. 딱 한 편을 꼽기가 어려워 여러 가지 영화 제목을 나열한다. 한 줄로 이어지던 대화의 실낱이 어수선하게 늘어진다. 대화가 방향을 잃고 더욱 어색한 상황에 빠진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고자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본다. 최애 영화를 한 편 찾는다는 건 새로운 관계의 거리를 좁힐 해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좋아하는 영화 몇 편을 작성해본다. 다소 생소할법한 제목들이 보인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부담이 생긴다. 적어놨던 영화에 빗금을 긋고 새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해본다. 방금 적었던 영화들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16살 때쯤으로 가보자. 홍콩영화와 일본영화에 푹 빠졌던 때가 떠오른다. 특히 주성치 영화와 일본 코미디 영화를 좋아했다. 그때는 웃으며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은 스무 살 후반에 들어서며 더 이상 꺼내보지 않았다. 인생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난 뒤 코미디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감상 매체를 바꿔본다. 초등학생 때 오래 살던 아파트 단지에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가끔 아버지의 요구로 이연걸이나 성룡이 출연한 비디오를 빌렸고, 동생과 함께 보려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빌렸다. 한 번 보고 반납하기에 돈이 아까워서 다음 날 오전에 꼭 한 번을 돌려보고 반납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해가 떠 있는 오후 내내 혼자 있거나 동생과 함께 있었다. 출출하면 식탁에 놓인 토스트나 콘푸레이크를 먹었다. 옆에는 꼭 전단지가 놓여있었는데 그 뒷면에는 간식을 챙겨 먹으라는 어머니의 글이 적혀 있었다.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됐다. 눈이 하얗게 쌓인 거리는 한산했다. 동네 친구와 놀다가 해 질 녘이면 빈집으로 돌아와 때 이른 고독을 느꼈다. 그때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은 1990년 영화 <나 홀로 집에>였다. 2시간가량의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TV에서 방영됐다. 공식적인 휴일인 크리스마스에 출근하지 않은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따뜻했다. 외출하지 않고 가족끼리 방안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나 홀로 집에>가 알려주었다. 다시 평일이 돌아오고 텅 빈 오후가 되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한 <나 홀로 집에>를 틀어놓고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렸다. 해가 지면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를 발라 먹었다.
극장 개봉한 영화가 그 당시 히트를 쳤더라고 1, 2년이 지나면 새로운 영화에 밀려나거나 5년, 10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나 홀로 집에>는 영화역사를 넘어 생애주기를 잇는 명작이다. 명작이란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제목이 자수된 의자에 앉아 기억 한편에 자리한 작품이다. 사회에서 생활하며 잊혔더라도 마음속에 간직해온 딱 한 편의 영화는 살아가고 죽어가는 회의와 허무에 작지 않은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을 공유하며 강렬한 교훈과 주제 없이도 사람을 성장시킨다. 어떠한 환경에도 방해 없는 고유한 속성. 삶에 물처럼 스며드는 아늑한 무엇. 이것은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어색한 대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 홀로 집에>라고 말해본다.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듣게 된 상대는 장난치냐는 반응이거나, 영화감상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나 홀로 집에>는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명작이며, 남녀노소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부연설명을 달아도 확실하게 방향을 잃는다. 때 이른 고독에 휩싸였던 초등학생에게 안락함을 주었던 영화. <나 홀로 집에>의 용감한 주인공 케빈을 보던 모든 아이들은 이미 케빈이었다. 홀로 빈 집을 지켜냈던 케빈. 한없이 장난꾸러기였던 케빈. 이웃을 돕고 예쁘게 웃던 케빈. 가족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였던 케빈. 이제 TV에서 방영하는 <나 홀로 집에>를 보기 어려워졌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기억과 추억 속에는 영화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가 여전히 재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