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페리아' 악몽에서 벗어나다.
식인(사람의 신체를 섭취하는 행위). 듣기만 해도 속이 안 좋아지는 소재의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주연이 티모시 샬라메라는 정보. 그 자체로 악마 같았던 영화 <서스페리아>(2018)를 세상에 내놓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 몇 가지 단서들을 종합해보니 치가 떨리면서도 고통을 씹어먹을 황홀한 기운이 핏속을 누비는 기분에 영화가 빨리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영화관 좌석에 앉아서 <서스페리아>의 악몽을 되새겼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고집부리지 말고 눈을 감아버리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잔인한 장면이 많지 않았다. (관객들의 어깨가 여러 번 움찔거리는 것을 목격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나 성장 영화 같은 장르성을 지내고 있었다. 또한, 서브플롯으로 전개되는 ‘설리’와 얽힌 관계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서스펜스와 디졸브 되고 그로 인해 쫄깃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작품에서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스토리와 스타일 앞에 모든 걸 내려놓고 배우로서 역량의 끝을 갱신한다. 방황과 외로움으로 잔뜩 응축된 존재인 ‘리’를 완벽히 소화해낸다. ‘리’의 뺨에 흐르는 눈물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다.
이 영화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마렌’이 어머니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하나의 성장통이다.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스토리는 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두 번째 이름 찾기 여정처럼 보인다. 종종 음악이 흐를 때면 오래전 미국 영화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물씬 드는 건 왜일까.
<본즈&올>을 보는 내내 식인을 좀비나 뱀파이어의 행위와 비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소재에 함몰돼 인간 존엄의 영역이 피로 물들 것만 같아 조마조마함마저 들었다. 하지만, 소재가 가진 특수성이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를 끌어온다는 점이 영화로서 매력적이다. 그렇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사랑과 욕망에 관한 집착은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영혼 불멸의 미성숙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