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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Apr 21. 2023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빛으로 겪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90년대 캐나다로 이민 간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

빛. 영화는 빛으로 탄생하고 죽는다. 빛을 빚으면 소리, 문자, 무형의 상상까지도 이미지로 구현된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동시대 영화와 달리 굵은 입자로 인해 화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는 16mm 필름으로 촬영됐다. 이미지를 디지털로 담아내는 현재에 필름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다. 빛을 담는 방식에서 필름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화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결정이 온전히 설명된다.


<출처: 다음 영화>


인간. 영화는 캐나다로 이주한 한국인 어머니(소영)과 아들(동현)의 삶을 담는다. 영화라는 틀로 인간을 가두지 않고 시대 안에서 재현되는 인간의 삶을 유영하듯 필름에 새긴다. 카메라는 굽이치는 시간의 유연한 줄기 위에 우뚝 선 곤충처럼, 방해물을 휘돌아 가는 물길에 몸을 맡긴 물고기처럼 움직인다. 조약돌은 물의 세기에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닳는다. 이민자가 처한 거친 운명은 무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감췄다고 믿어야 할 뿌리를 찾아야만 하는 숙명.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숙제일지 모르나, 시대의 진폭 양극단에서 부유하는 이민자에게는 삶을 지탱할 무한의 여정이다.


<출처: 다음 영화>


소리. 어머니 소영은 아들 동현과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대화한다. 새로운 사회에 발 붙여야 할 아들의 이름은 두 개가 된다. 어느 쪽 하나 확실히 선택할 수 없는 동현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학교로 불려 간 소영은 의기소침한 아들에게 고개를 들라며 당당함을 가르친다. 천적의 위협으로 가득한 자연 속에서 새끼를 지켜내려는 어미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는 이미지보다 위대하며, 하나의 인간, 한 명의 여성을 뛰어넘는다. 모든 것을 품어주고 흘러가게 한다. 자연마저도 모성의 힘에 존경을 표한다.


<출처: 다음 영화>


산. 산의 고요함은 언어가 침투하지 못할 숭고한 휴식을 준다. 소영이 캐나다에서 찾은 산은 속죄의 산이다. 그러나 모국의 산은 소영의 한을 정으로 품어준다. 동현에게는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 또한 겪어야 할 낯선 성장통이다. 그러나 새로움은 아이의 흥미를 이끈다. 아이의 순수함은 어디서든 풍요로움을 흡수하고 언제든 즐길 준비가 돼 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빛으로 겪게 한다. 영화의 아름다움은 인간과 자연 그사이에 진실한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체험으로서의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은 오직 그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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