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개그에 관한 단상
아재는 일반적으로 중년 남성을 가리킨다. 신조어로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몇몇 지역에서 사용되어 온 방언이며, 표준어로도 지정된 표현이다. 어학사전에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게 정의된 아재가 하는 특정 개그를 '아재 개그'라고 통칭하는 듯하다. 지금 아재의 용도를 보면 아저씨에 접어든 남성을 희화화하거나 비하의 수단으로 쓰이는 듯하다.
더욱 깊이 들어가자면 세분화해 볼 수도 있지만 이쯤 해두고, 우선 이 글을 써보는 이유는 나 또 아저씨로 정의된 범위에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재 개그를 하기 시작한 현실을 인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가까이 지내는 상대가 내게 '아재 개그를 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재가 된 이상, 아재 개그를 할 수밖에 없는 나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러한 특정 개그를 왜 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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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그렇게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은 축에 속한다. 관심 있는 특정 주제라면 진지한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있지만, 애초에 말하는 행동에서 많은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1시간 이상 대화를 지속하기가 어렵다.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상황은 많지 않으며, 꼭 필요한 상황에 용기를 내서 대화를 건다.
(2)
나와 잘 맞는 분위기에 어울리거나 친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조금은 다른(사실은 진짜 나일지 모를) 내가 나온다. 술을 몇 잔 걸쳐 알딸딸하거나, 재미난 소재거리가 있다면 남들보다 말을 많이 또 크게 하는 사람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00 씨, 몰랐는데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요.'라는 말도 듣는다. 아무튼 상황에 따라 변덕스러운 편이며, 어떻게 보면 자기 편할 때만 대화를 이끌어가는 이기적인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3)
위와 같은 특성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에서 드러나는 특징일 수도 있다. 결이 완전히 다르거나, 첫 만남부터 기존세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엄청난 거리감을 느낀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자꾸 끌어내려는 상대에게는 적대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은근히 섞여 나오기 때문에 상대에게 적잖이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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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처음 만난 사이라면 위에 정의한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거치는 데 평균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에 관한 관찰일 뿐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3개월, 6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1년, 2년도 족히 걸릴 수도 있다. 만약 세 가지 경우를 한 번에 뛰어넘거나 모든 과정을 (서로가) 극복한다면 정말 거리낌 없는 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길을 걷다가도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농담도 주고받게 된다. 상대가 기분 좋아하거나 내 말에 웃어재낀다면 희열을 느낀다. 위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넘어섰다는 나 자신의 희열이다. 맞다. 저 세 가지 관문은 상대가 나를 통하는 시험일뿐만 아니라, 문 안쪽에 서서 나를 열어내기 위한 자물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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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스무 살 후반까지는 그랬다.
지금 누군가 내 나이를 묻는다면 서른 중반이라고 얼버무린다. 적지 않은 나이다. 어른들 앞에 한창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기능이 떨어져가는 몸뚱아리는 강력한 반대 메시지를 보낸다. 신체적으로 힘든 순간을 맞이하면 급격히 지쳐버린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근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감지된다. 세상이 내 몸에 빨대를 꽂고 근력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고 느낀다. 이때부터 모두가 알다시피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만 한다. 운동은 서른 중반을 거쳐 가는 사회인에게 필수 요소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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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을 이기고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일상과 업무에 활력이 돋고 허덕였던 신체적 업무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해낸다. 하지만, 그 나이대에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강도는 파도처럼 높아져만 간다. 스트레스가 정신에 몰리니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버린다.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싶지만, 몸을 일으켜야 한다.
직장 이외에도 챙겨야 할 것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성을 만나고 있다면 관계에 힘을 쏟아야 하고, 결혼을 생각한다면 온갖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 아이가 있다면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 매일 사 먹을 수는 없으나 전담하에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길 반복이다. 주말에는 맛집 앞에 줄을 서서도 서로가 웃어내야만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핸드폰 사용법, 인터넷 뱅킹 이용법, 건강을 챙겨드려야 한다. 이 이상의 것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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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면 애인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여유롭게 거리를 걷는다. 오랜 시간 만났기 때문인지 새로운 대화의 주제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적어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주제가 없다면 주제를 찾는다. 눈에 보이는 재밌는 음식점 간판, 스피커를 달고 나이트클럽 홍보하는 자동차... 더 찾지 못하면 애인이 하는 말속 단어를 이용해 말장난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 말 않던 애인은 말장난이 반복되자, 예전과 달리 아재 개그를 너무 많이 한다고 말한다. '재밌어하는 줄 알았지'라는 말을 꺼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보다도 상대와 대화하며 다양한 주제와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타인과 함께하는 그 상황을 이겨내려는 것이 아닐까 나에 대한 의심이 든다.
'상황을 좋게 만들어야 하니까.'
상황을 좋게 만들려고 꼭 그런 말장난까지 해야만 할지 의문이 든다. 고민은 고통이다. 위에서 길게 늘어놓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조금은 도움이 됐다.
(1)번처럼 말수가 적은 사람은 말해야 상황이 꽤나 힘들다. 기가 빠진다고 해야 할까. 그럼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것도 체력의 문제일 수 있고, 다른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2)번처럼 분위기는 좋으나 소재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회사나 외부인과의 술자리에서의 인정욕, 개그 욕심이 본능적으로 꿈틀대기 때문이리라. 얼음처럼 차가운 미팅 자리를 뜨겁게 데워 내가 열연할 수 있는 무대의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런데 그것이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3)번은 위에 두 가지 경우와 달리 내면과 무의식의 영역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좋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서로의 깊은 곳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판단한 사이라면 이 경우의 수를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좋은 상황 유지를 위해 행동과 표정을 주의해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인 힘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것은 정말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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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아재 개그가 아재에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첫 번째, 자연스럽게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그렇게 떨어지는 체력의 영향으로 집중력의 흐트러짐을 들 수 있겠다. 그 흐트러짐은 사회적 책임과 스트레스가 커진 것이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지 않을까 싶다. 동시대에 치열히 살아가는 인간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재 개그를 할 수밖에 없는 것. 이 또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아재 개그는 똑똑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최후의 기술이라 말하고 싶다. 서로가 잘 지내보고 싶은 관계 앞에서만 할 수 있는 작지만 큰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재 개그를 '당한' 다면 상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아닌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는 시그널이라고 보면 좋겠다. (물론 혐오하는 사람에게 듣는다면 다른 얘기지만) 싫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아재 개그를 하지는 않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