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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원치 않는 선물을 할까

정말 그건 배려였을까?

by 오묘미

난 상대를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상대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챙겨주고, 상대가 가고 싶었던 음식점이나 카페를 미리 찾아서 제안하고,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을 고려해 약속 시간이나 장소를 정했다. 가끔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탄한 줄 알았던 애인과의 관계는 이 '배려' 때문에 똑같은 싸움이 반복됐다.


우리는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아주 답답했다. 사랑과는 동떨어진 문제로 느껴졌다.


사랑하지만, 안 되는 게 있어.


남들이 헤어지는 이유처럼 바로 그 '성격 차이'가 이 관계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다. 괴로움과 우울함에 시달렸다. 만났을 때 즐거워도 똑같은 순간에 터지는 싸움에 서로가 지쳐가고 있었다. 오래 대화를 나눠서 상황이 정리 돼도, 또 똑같은 문제가 터졌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새벽까지 이어진 카톡 대화에서 우리 둘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솔직하지 못함은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과 상황을 먼저 살피고, 상대에 맞춰 행동하는 것. 이것을 '배려'라고 불렀지만, 양쪽이 배려를 하니 그것이 충돌했다.


배려와 배려의 충돌


뭔가를 정할 때 서로 배려한답시고 '너는 뭐가 좋아?', '너는 뭐 먹고 싶어?',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를 반복하니 결정이 쉽게 안 나 답답해졌다. 도대체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원하는 게 뭘까? 만남의 설렘과는 정반대의 답답함이 몰려와 숨이 턱턱 막혀버리는 기분이 지속됐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이 '배려'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 나의 모든 행동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네가 물어본 나의 행동들은 이러이러한 의미에서 그런 거야. 나의 대답에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과,
자신을 배려하는 건 다른 거야.


난 애인과 싸울 때 나의 입장을 대면하는 말을 많이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조금 피곤해서 그래.', '다음날 뭘 해야 하기에 그랬어.', '00가 싫어서 그랬어.' 등의 이유를 댔는데. 애인의 말을 듣고 그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본 순간. 나의 배려는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나를 배려하려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했던 행동들은 배려가 아니라
나를 대변하려는 이기심이었다.


서프라이즈랍시고 상대에게 먼저 묻지 않고 원하지 않는 선물을 했던 상황 또한 상대와의 정서적 교류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을 단지 '해보려는 행위'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마다 상대는 '같이 정하지 그랬어.', '미리 얘기를 해주지 그랬어.'라고 말하며, 원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아갔고. 나는 상대가 웃으며 좋아하는 반응을 상상하며 내가 만족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상대의 표정 하나까지 살피며, 상대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라고 자기 위안을 하고 있던 것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카톡 대화에서 나의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책을 읽어도 알 수 없고, 유튜브를 봐도 알 수 없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돼 버렸다. 애인뿐만 아니라 부모나 형제, 친구나 회사 동료에게도 했던 말과 행동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배려'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렇게 선한 양의 탈을 쓰고 살아왔던 것이다.


여느 전문가들 말로는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이고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나'를 먼저 존중해야 상대를 존중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난 그 균형이 나에게 더 쏠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배려'라는 가면을 쓰고서 말이다. 이 가면을 쓴 나는 상대가 상처받는 줄도 모르고 '난 잘하고 있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앞으로는 더 솔직하기로 했다. 상대의 반응과 기분을 짐작하지 말고, 더 많이 물어봐야 한다고 다짐했다. 상대가 나의 만족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의 반응을 어림짐작하는 행위에 반기를 든다. 미래를 생각해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재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의 감정, 현재의 기분, 현재 상황, 현재의 너와 나를 위해서.


관계는 어렵다. 특히 사랑이라는 탈을 쓴 관계는 더욱 어렵다. 그럴수록 더욱 솔직해야 한다. 특히 나에게 솔직해야 한다. 거울을 들어 나를 보라. 나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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