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경계 - 2

by Chilly Sky

임신이 서로의 균형을 흔들어 놓는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간의 균형'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나는 수많은 매체와 미디어에서 표방하는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들을 상당히 싫어했다. 정확히는 물질만능주의나 외모지상주의를 중심으로 하기보단 서로 간의 공감과 사랑, 그리고 존중을 중심으로 남녀 간의 관계를 바라봤다(지금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외모나 학벌, 그 외 사회적인 척도로 스스로나 상대방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으며 흔히 외모가 출중한 누군가를 보고 엄두를 못 낸다거나 하는 상황도 내게는 해당되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직업이나 학벌보다는 건강한 마음과 몸에서 나오는 대화가 이성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척도였으며, 나와 동일한 척도를 가지고 서로 대등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에 해당했다. 외모나 직업과 다르게 삶을 살아가며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해당하는 부분도 장점 중에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 생각하는 부부간의 균형은 결국 서로 간에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등한 관계였다. 즉, 앞선 주제로 돌아가면, 나는 임신이 서로 간의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어느 정도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간단하게는 임신 전에는 편하게 이야기했던 말투에 대한 피드백들이나 집안일과 생활습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려워지고, 복잡하게는 서로의 트라우마나 성향에서 비롯한 민감한 부분에 대한 존중이 이전보다 무뎌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나의 가사부담률이 더욱 증가했고 요구사항들도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으며 이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도 증가했다. 아마도 와이프가 임신으로부터 얻은 책임감과 부담감에 비례하여 상승한 나 스스로의 책임감에 대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의 성격은 무언가 적당히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힘들면 적당히 조절해야 했음에도 상대의 요구들이 어떻든 최대한 노력했으며, 내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줄여 임신기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우리의 임신기간이 잘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임신 7개월쯤이 되었을 때, 내 마음이 고장 나버렸다. 임신기간의 과도한 책임감이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우울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와이프의 요구사항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했고, 말할 힘도 없어지며 충전할 시간을 가지기도 부담스러워졌다. 와이프에 대한 배려에서 스스로에 대한 방관으로 점점 생각이 변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즉, 지난 7개월간 향후 지속가능성이 없는 책임감을 수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며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부분, 임신기간 중 나의 상태를 아내와 함께 상의하지 않았던 그릇된 배려, 그리고 처음 겪어보는 임신이라는 상황에 대한 무지함이 초래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의 솔직한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여기서 솔직한 대화는 상대방을 위한 표현적 배려가 깔려있는 상태를 가정한다) 부부간의 문화와 균형이 임신 이전보다 발전하고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다만, 위와 같은 인사이트에도 내 스스로의 마음상태는 여전히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사이트가 어떻든 스스로의 마음이 개선되어야 실행력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마음상태를 수습하기 위해 오랜만에 개인상담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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