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태어났다

소감문

by Chilly Sky

수술 전날에 입원을 요청받아 아내를 입원실로 올려 보냈다. 코로나 이후로 위생수칙이 강화되어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병실이었다. 같이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만 환자의 식사시간에 잠시나마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여 아쉬움을 달랠 뿐이었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 양갈래 머리에 휠체어를 탄 아내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다. 물어보니 수술실에 들어가기 마지막 면회라고 했다. 마지막 만남을 뒤로하고 입원실 너머로 멀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짠하고 안쓰럽던지.. 참으로 야속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기실 앞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차에, 적막을 깨는 한줄기 소식이 들려왔다.


'김 OO 산모 보호자분 들어오실게요'


나는 산모를 먼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처음 보는 조그마한 아이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물어보니 눈앞의 아이가 갓 태어난 우리의 아이였다.


그렇게 2025년 9월 10일, 우리의 딸이 태어났다.


마주한 첫인상은 감격스럽다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인터넷 속의 후기와는 사뭇 달랐다. 충분히 마음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태어나보니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가락, 발가락을 체크하고 몇 가지 안내를 받고 나니, 그때서야 세상에 내가 태어났다고 젖도 안 먹어본 입으로 힘차게 울어대는 자그마한 아이가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아이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금 정신을 차려 산모를 만난 건 수술 후 약 6시간 정도가 흐른 뒤였다. 물론 산모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서라지만 배우자마저 보지 못한다니 참 잔인한 규정이었다. 그렇게 수술 후에 처음 만난 아내의 모습이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면서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수술 이후에 좌충우돌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잘 회복하여 태어난 지 26일째 된 딸을 집에서 잘 키워나가고 있다. 앞으로 간간히 딸을 키워가며 느낀 점들이나, 생각나는 부분들을 적어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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