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육아에 관하여

그런데 관계를 곁들인..

by Chilly Sky

현재시각 오전 4시 17분, 악명 높은 새벽수유를 수행하고 난 뒤에 작성하는 글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일이 내게는 상당히 힐링되는 시간이다. 분유를 용량에 맞추어 타고 수유의자에 앉아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면, 먹는 것에 집중하는 아기의 모습에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작지만 누군가에겐 큰 100ml의 식사를 온 힘을 다해, 숨까지 몰아쉬어가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아기의 리듬에 맞춰 젖병을 맞추는 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기(신생아)와 부모 간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엄마보단 아빠와의 유대감이 본질적으로 적다고 느낀다. 아마도 구조적으로 남성은 임신할 수 없기에 그런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위와 같이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면서 집중할 때 아기와의 유대감이 점점 생기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아기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상호작용하는 활동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부러라도 내가 아기에게 분유를 더 먹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손목보호도 겸해진다).




이렇게 육아에 빠져들고 몰입하는 나도 처음에는 육아가 마냥 두려운 것이었다. 먼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도태되진 않을까 두려움이 있었으며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이 내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육아를 수행하며 소원해져 가는 미디어 속의 부부사이가 큰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 아기가 순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할만한 것 같다. 아무래도 동시에 육아휴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우리의 부부사이는 오히려 임신기간보다 더욱 좋아진 것 같다고 나는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왜 우리 부부는 흔한 미디어, 언론, 또는 주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할만한 걸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1. 저울의 배재

오래된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반반결혼, 이퀄리즘과 같이 부부사이나 커플들 간에 '평등'을 강조하는듯한 메시지가 많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특히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평등이 강조되었던 것 같으며, 물질적으로 환산하기 부적절한 것들도 물질으로써 환산하여 계산에 넣는 엄밀함이 대두되었던 것도 같다 (요즘도 그러한가..?).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위와 같은 물질적인 평등을 지양하고, 관계의 동등함을 엄밀하게 관리했던 것 같다.


왜 물질적인 평등을 지양하고 관계의 동등함을 엄밀하게 관리했을까?


먼저 개인적으로 사람사이를 가장 흔하게 변질시키는 감정은 '질투'라고 생각한다. 질투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때 발생한다.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모, 성격, 차, 돈 등등 불특정 다수의 요소들이 질투의 매개물이 된다. 물질적인 평등에는 앞서 말했듯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환산하기 부적절한 부분까지 환산하여 부부간에 '비교'해야 한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인 평등은 구조적으로 부부간에 질투를 유발하도록 장치되어 있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서로 간에 비교하기 시작하면 질투가 발생하고, 질투가 발생하면 서로 간에 오만가지 사소한 것들에서 저울질이 발생한다. 저울질은 끝나지 않으며 그 종착지에는 승자와 패자 간의 갈림길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혼준비부터 비교의 저울을 파괴하고, 대신 서로의 등을 맞대어 파트너로서 활약하기로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서로 간에 물질적인 비교를 배재한 것이 즐거운 육아생활의 첫걸음이지 않았나 싶다.




2. 관계의 동등함

서로의 등을 맞댄 파트너로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 서로가 리더이자 팔로워로써 작용해야 하며 대화는 적극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 가며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불안정해 존중과 배려보다는 날카로움이 도사릴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운동과 상담으로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기로 했다.


육아휴직도 관계의 동등함을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써 사용되기도 했다. 흔히들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면 부부 중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하여 서로 간의 역할이 나누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도 처음에는 육아휴직을 번갈아 사용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시적이든 아니든 역할이 나누어지는 구조는 서로 간에 이해를 떨어뜨리고, 이는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함께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관계가 동등하니 서로 간에 편안하고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고, 아기에 대해 상의할 부분이 있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자유로이 내어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합의점을 도출하기 용이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소외감도 관리하기 좋았고, 서로의 상태도 시시각각 파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관계의 동등함이 힘든 육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3. 애정

내가 생각했을 때 위와 같은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대전제는 서로 간의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없다면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불합리가 너무나 많아진다. 따라서 다른 누구보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애정하고,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로의 로맨틱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오래된 부부여서 의리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남사스럽다거나, 쑥스럽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부부가 서로에게 애정이 없다면 다른 누구에게 애정을 갈구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각박한 세상에서 내 옆의 한 사람이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게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고 투자하면 어느 순간 서로의 짙은 그림자마저 함께 바라보고, 새로운 생명에게 따뜻한 사랑을 한마음으로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서로 간의 애정은 힘든 육아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힘든 시기, 역경, 변화를 잘 넘겨내고 나아가 삶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기둥이었다고 생각한다.




점점 각박해지고 치열해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딸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걱정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이제 태어난 지 한 달인데도 말이다..ㅋㅋ). 다만, 우리 부부의 사랑이, 나아가 온 가족의 사랑이 어린 딸이 앞으로를 살아갈 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내가 그렇게 큰 힘을 받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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