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관계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녀관계부터 부부사이, 가족관계, 심지어 헤어졌던 관계까지 온갖 짝지어짐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다.
우리 부부도 그중 '나는 솔로'라든가 종영한 '고딩엄빠'와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고는 했다(사실 와이프가 즐겨보고 나는 약간의 고통스러움을 겸하며 보곤 했다).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몰려온다. '왜 저런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까?',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게 된 경위가 무엇일까?'와 같은 생각부터 '왜 저렇게 자신을 방치할까?', '자신의 자식에게 책임감을 좀 더 느껴도 되지 않을까?', '왜 갈라서지 않을까?'와 같은 가볍고 무거운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휴직을 쓰고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나의 삶이 육아이더라. 회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의 호기심에 석사도 취득했던 나에게는 육아의 과정 중 약간의 우울한 감정이 이따금씩 몰려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편안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육아에 임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꼭 나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보는 것, 만지는 것, 맛보는 것 하나하나가 처음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불편함, 불쾌함, 강박은 아이에게 전달되어 아이가 온전히 느끼고 판단하는 것을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환경에서 싫은 것은 싫다고, 좋은 것은 좋다고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나부터 편안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환경이 아이에게 제공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이에게 관계의 기준선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관계 속에서 절대적인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에는 각자의 입장이 있고 서로의 입장에 따른 기준을 이해하고 배려해 가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때, 가정환경은 업무환경, 교우관계 및 남녀관계까지 전반적으로 맺는 관계 속에서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준선을 제공할 수 있다.
부모가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때의 편안함이 기준이 되어 나의 불편함을 예민하게 감지해 낼 수 있고, 불편함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부모의 강박이나 불편함이 환경에 녹아들어 제공된다면 그것이 기준점이 되어 누군가의 강박이나 불합리로부터 영향을 받을 때 감지해내지 못하고 수긍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앞서 말했던 프로그램 속의 인물들로부터 그들의 가정환경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중에는 다른 경험에 의해 기준이 변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우리가 판단하지 못할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그저 편집된 결과물에 나 자신이 과몰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이따금 출연자들의 판단에 놀라기는 하는 것 같다. '꼭 저렇게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 스스로에게 솔직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남 생각해서 뭐 하겠는가. 일단 내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아이부터 잘 키워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