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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재 Mar 06. 2019

중년의 커피 뽑기 78

왜? 사냐고 묻거든 “그 린 북”

하루에 많게는 3편의 영화까지 보았습니다. 내용이 생각나거나 미음에 여운이 남진 않지만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떡해서든 보내야 하니 영화다 미드다 막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은 그린북이란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어디서 상 받았다는 영화는 보질 않습니다. 왜냐면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성찰한 작품이니 철학적이니 뭐니 하는 작품들의 무거움과 우울함에 깔려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내 인생도 꿀꿀한데 영화까지 뭐하러 그런 걸 봐야 하나 싶기도 해서죠.  


그렇게 그린북을 싹싹 피해 가다 어떤 분이 쓴 감상평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는 말에 넘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왜 영화의 제목이 “그린북인지” 몰랐습니다.  1936-1966 미국 사회 특히 남부지역은 아직도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 흑인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과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백인 전용 식당이나 술집에 흑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만약 어기면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세계적 재즈가수 냇 킹 콜도 남부지역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집배원이며 흑인이었던 빅터 휴고 그린이 흑인들을 친절하게 받아주는 식당이나 모텔 등의 가계 이름을 기록해 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수년간 미국 전역을 일일이 다니며 기록하였고 초판에 숙소, 식당, 주유소(당시 흑인에겐 기름을 팔지 않는

주유소도 많았다고 하네요) 정도의 정보만 수록했다 점점 미용실, 극장, 여가시설까지 추가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린북은 여행하는 흑인들의 지침서가 됩니다.

1966년 사라지기까지 미국 내 흑인 차별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그린북” 의 배경이 바로 그 정점을 찍던

1962년입니다.

그린북의 피터 패럴리 감독은 줄곧 코미디   영화를 찍었던 사람입니다. 대표작품으로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그린북에서도 약간의 코미디적 감성이 녹아 있습니다.

주인공 토니 발레 롱 가는 (비고 모텔 슨,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역을 맡았던 연기자로 완전 딴판의 모습을 보여줌) 입과 주먹으로 먹고사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의 건달입니다. 나이트나 술집의 문지기를 하며 일정한 수입 없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자신의 집 싱크대 하수구 수리를 위해 방문한 흑인 노동자가 마신 유리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흑인에 대한 편견이 강한 인물입니다. 그런 토니에게 두 달가량 미국 남부지역을 순회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차량을 운전해 주는 일자리가 들어옵니다.


당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로 북부지역에서 연주를 하면 3배로 출연료를 더 받을 수 있음에도 남부지역에 극심한 흑인 편견을 용기 있게 맞서길 원했던 돈 셜리 박사(마허 샬라 알리, 벤쟈민 버튼 시간은 거꾸로 간다 출연) 만나게 됩니다.



이 둘은 긴 여행기간 동안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떻든 무슨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상관없이 오직 피부색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던 시대에 흑인이면서

천재적 뮤지션이자 박사학위까지 소유한 돈 셜리 박사는 흑인사회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고 남자답지도 못한(게이 성향)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사는 자신의 답답함을 토니에게 고백합니다.


이 영화 그린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담은 대표적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헬프” 와 같이 흑인이 백인을 위해 일하는 일방적 구조에서 벗어나 백인이 흑인의 운전기사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린북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그러나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입니다. 돈 셜리 박사는 영화에선 형제와도 인연을 끊고 사는 외로운 사람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흑인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친구로 셀마 몽고메리의 행진에도 참여하며 흑인 차별 운동에 적극 가담함은 물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형제 3명을 키우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 실제 인물과 영화 속 인물이 비슷합니다 }


또 운전기사 토니와는 철저히 보스와 직원의 관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실제 토니는 고분고분하지 못한 태도로 해고되었고 남부 투어 중 콘서트 한 곳에서만 고용돼 일했다고 하네요.

영화 제작 당시 돈 셜리 박사 가족에겐 자문을 구하지 않고 영화가 제작되어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더 이상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원색적 시대는 아니지만 아직도 세상엔 차별이 존재하기에 영화 “그린북”은 우리에게 사람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합니다.

어릴 적 교회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흑인은 너무 태워서 검게 됐고 백인은 덜 구워 하얐고 황인종이 제일 적당히 구워져서 피부색이 그렇다”

고 말한 선생님이 생각나 웃음이 나네요.


봄이 되었습니다. 숨 죽이고 있던 연녹색의 새싹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생명의 간절함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예전 푸른 꿈을 안고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그토록 받길 원했던 영주권도 “그린카드”라 불렸다죠. 처음 영주권 카드가 그린색이라 붙여진 별칭이지만(이후 다양한 색으로 만들어짐) 그린은 우리에게 어쩜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소망의 색인 듯합니다. 흑인들에게 “그린북”이 그러했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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