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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Sep 08. 2022

내가 알게 된 세상,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세상

초보 탐조인의 기록

오늘 아침에 약 한 시간가량 집 앞의 공원과 야트막한 산을 산책하는 동안 아홉 종의 새를 봤다. 너무 흔해서 새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까치, 멧비둘기, 참새. 그리고 조금만 관심 갖기 시작하면 쉽게 볼 수 있는 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고 지나치는 새들, 직박구리, 박새. 새소리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쌍안경으로 봐야만 제대로 보이는 곤줄박이, 쇠박새, 동고비, 쇠딱따구리. 이렇게 아홉 종이다. 앞서 말한 세 종을 제외한 여섯 종은 새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존재조차 전혀 몰랐던 새들이다.


새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탐조’ 활동을 시작한 건 올해 5월부터다. 고작해야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게 억울할 정도로 새들에 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현재까지 관찰한 종은 총 49종이다. 그토록 많은 이웃이 생겼다. 이제 동네에서 새로운 종을 관찰하기는 어려워서 새로운 새를 보기 위해서는 계절이 바뀌어서 겨울 철새들이 오거나, 새들이 많이 온다는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렇지만 꼭 새로운 종을 봐야만 의미있는 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새들도 종종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주 관찰해도 재밌다. 요즘엔 그런 재미로 아침에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탐조를 꾸준히 다닌다.


참새는 떼로 몰려다니는 데, 공원에 물이 얕게 고여있는 곳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참새가 모래에서 목욕 몸을 씻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원의 정자 처마 밑을 드나드는데, 그곳에서 새끼를 키우는 듯하다. 직박구리는 목청도 크고 수가 많아서 자주 볼 수 있는 만큼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어느 날은 까치와 싸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나무에 달린 작은 열매를 따먹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서 일찍 익은 감을 쪼아 먹기도 했다. 또, 얼마 전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새들은 봄에 새끼를 많이 키우는데, 직박구리나 참새 같은 텃새들은 봄이 지나서도 꾸준히 육아를 하는 듯하다.


딱따구리 중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그중 가장 작고 귀여운 아이가 쇠딱따구리다. 이름 앞에 ‘쇠’가 붙는다는 건 그 종류의 새 중에서도 더 작은 종이라는 의미다. 쇠딱따구리는 눈으로 보기에도 오색딱따구리보다 확연히 작은 몸집을 지니고 있는데, 참새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보기에는 작아도 단단한 나무를 ‘또로로 록’ 하고 쪼는 소리는 다른 딱따구리 못지않다. 작은 몸과 부리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하고도 놀랍다.


딱따구리 중에 제일 귀여운 쇠딱따구리

동고비는 새 중에서도 특히 나무를 아주 잘 타는 새다. 움직임이 워낙 빠른 데다가 거꾸로 매달리기도 잘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얼마 전부터 내가 자주 가는 탐조코스에 누군가가 새들이 좋아하는 곡물을 뿌려둬서 그곳에 먹이를 먹으러 온 동고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원에 자주 오는 사람 중, 나 말고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는 게 분명하다.) 다른 새들보 다도 동고비는 유독 그 먹이터의 단골손님이었다. 동고비는 아이라이너를 길게 그린 듯 눈가에 새까만 가로 줄이 선명하다. 등은 회색이고 얼굴에서 배로 이어지는 부분은 흰색이고 꽁무니는 옅은 갈색이다. 오묘한 색 조합이 무척 예쁘다. 특히나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아래를 쳐다볼 때 동고비는 몸을 ‘ㄱ’ 자 모양으로 구부리는데 그 특유의 포즈가 유독 매력적이다.


누군가가 먹이를 뿌려놓은 곳에서 본 동고비

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기들이 귀엽듯 아기 새들 또한 너무도 귀여운데, 새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봄에 부모 새들은 아기새를 먹이기 위해 정말 쉴 새 없이 바삐 날아다니고, 아기새들 또한 쉴 새 없이 부모 새들을 보챈다. 멀리 있는 작은 새들은 누가 부모고 누가 아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쌍안경으로 보면 아기새와 부모 새의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아기새는 솜털이 있어 몸통이 더 복슬복슬해서 얼핏 부모 새보다 몸집이 더 커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아기새는 다른 새들에 비해 움직임이 유독 둔해서 자리를 잘 옮기지 않고, 먹이를 보챌 때 특유의 행동이 있어서 금방 아기라는 게 드러난다. 흔히 들리는 참새 소리보다 작고, 여린 소리로 ‘짹짹짹 짹’ 작게 자주 반복적으로 울며 날개깃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부모 새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미리 입을 벌린다. 작은 입으로 생각보다 큰 곤충이나 열매 같은 것을 잘도 삼킨다.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관찰한다. 텀블러만큼 기다랗고 무거운 렌즈가 장착된 DSLR 카메라와 쌍안경을 메고 나무 위를 자주 올려다보며 천천히 걷는 내가 수상해 보이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나를 보기보다는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흔히 보이지 않는 귀한 새가 지금 당신 머리 위에 있다고, 지금 당신 바로 옆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고 알려주고만 싶다. 저 새는 그냥 참새가 아니라 솜털이 복슬복슬한 아기참새이고, 엄마에게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고. 그 귀여운 모습을 알면 당신이 이곳에서 쓰레기를 내던지고 싶지는 않을 텐데. 당신이 이곳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텐데.

솜털이 뽁실한 응애 직박구리
나무열매를 좋아하는 직박구리
응애 참새!!!
복실복실한 응애 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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