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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Nov 17. 2022

선물을 사양하는 대신, 스스로 축하하는 생일

언젠가부터 생일이 되면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주기를, 더 많은 선물이 들어오기를,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있기를. 조금은 내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들도 꽤 있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 친구가 먼저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어떤 친구는 예상치 못하게 좋은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바람은 자꾸만  커지곤 해서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날들많았다. 내가 가입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각종 쇼핑몰에서 생일 기념 쿠폰이라면서, 교묘하게 구매를 조장하는 할인 쿠폰 문자. 포털에서 띄워주는 ‘생일 축하 메시지그런 것들이 너무 부질없이 느껴졌다. 무언가 ‘축하 받지만 정작 아무런 마음도, 감동도 담겨있지 않은 ‘축하들’. 생일이라고 해야 하는 일들을 모두 미루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만 마음껏 채울  없는 현실. 그런 상황들이 ‘생일이   건가하는 마음이 들게끔 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생일에 누가 축하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축하를 얼마나 받든 신경 쓰지 말고 내 나름대로 생일을 즐겁게 보내보자 마음을 먹었다. 파티를 주최하기도 했는데 막상 그 파티는 예상치 못하게 취소되었다. 그래도 나는 생일을 일주일로 확장하여 그 주 내내 즐겁게 보냈다. 혼자 경복궁을 산책하고, 미뤄두었던 요리를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친구와는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 친구가 꽃도 선물해준 덕분에 꽃이 피어있는 한 주 동안 마음이 산뜻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맞는 생일답게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주었고, 생일 다음날에는 함께 뮤지컬을 보았다. 작년 생일은 ‘생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스스로 축하하는 날’이라고 처음으로 생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고 그 어느 때보다도 멋지게 보낸 해였다.


올해 생일도 역시나 즐겁고 멋있게 보내고 싶었다.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난달에 비건식을 지향하는 친구들과 만나 나눴던 얘기를 떠올렸다.

‘생일이 되면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너무 쉽게 택배를 주고받거나 기프티콘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누구에게나 선물해도 무난한 핸드크림이나 립밤 같은 것들이 쌓인다. 그런 것들이 쓰레기를 많이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받으면 나중에 또 그 친구가 생일일 때 뭔가 보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데, 매년 고만고만한 것들 중에 골라 주고받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때 얘기를 나눈 후에 카카오톡에서 생일 알람을 꺼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막상 꺼두자니 생일 알람을 꺼두었을 때 받지 못하게 될 안부 연락이 조금 아쉬워졌다. 사실 생일을 빌미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연락하게 될 때는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썼다.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통해 내가 생일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발견하기 전에 SNS 게시물로 먼저 띄웠다. 그러면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렇게 썼다.

‘생일 선물은 환경보호를 위해(조금이라도 물건 낭비를 줄이고자) 정중히 사양합니다. 마음으로만 축하해주셔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축하해주셨다 맘대로 믿고 충분히 감사한 하루를 보내보겠습니다.’

선물은 부담스럽지만 축하는 받고 싶은 소심한 관종이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써놓고 카카오톡 생일 알람은 켜 두었다.

내가 방장으로 활동하는 330명이 있는 단체 오픈 채팅방에는 11월 17일 0시가 되자마자 이런 말을 써서 올렸다.

‘저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누가 축하해주기 전에 먼저 축하해버리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문구


생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게 부끄러워서 은근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주기를 바라던 지금보다 훨씬 더 소심했던 관종, 과거의 나 자신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메시지를 띄우면서 그동안 선물을 주고받았던 친구들이 조금은 섭섭해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원래 줄 생각도 없었는데 웃긴다고 생각하려나 약간은 눈치 보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뿐이었고, 그저 후련하고 좋았다. 선물을 사양한다고 내가 선수 치지 않았다면, 나는 축하를 그만큼 밖에 받지 못한 것이 되었을 텐데, 선물을 사양한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마치 많은 축하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일부러 받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내 생일을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평소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축하라도 나는 받은 걸로 칠 테니까.


그리고 축하는 정말로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축하의 말을 들어도 내가 스스로 이만큼 살아왔음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다면, 내가 내 삶을 축복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불행할 것이었다. 생일 당일인 오늘 아침, 나는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마음껏 하면서 보내자고 생각하면서 동네 공원에 새를 보러 갔다. 공원의 수많은 새소리가 나에게 건네는 축하의 말이라고 상상하며 걸었다. 그러다가 처음 보는 모습의 새를 발견했다. ‘힝둥새’였다. 그 새를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태어나서 오늘까지 살아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덕분에 이런 예쁜 새를 보네.

이날 본 ‘힝둥새’, 직접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야생조류 필드가이드>에 수록된 사진으로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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