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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y 06. 2022

산속 목소리들의 주인공을 찾아서

탐조를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새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알고리즘 순서는 대략 이렇다. 평소 즐겨보던 ‘최재천의 아마존’ 채널 영상에서 어느 날 새들의 구애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양한 새들 중 많은 경우, 암컷보다 수컷이 훨씬 화려한 모습을 지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꿩, 원앙, 청둥오리, 공작새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어떤 수컷 새들은 구애활동을 할 때 맹렬한 춤 연습을 하기도 하며, 각종 나무 열매와 예쁜 돌들을 모아 둥지를 짓기도 한다. 이 얘기를 듣고 그 모습이 궁금해서 구애의 춤을 추는 수컷 새와 건축가처럼 예술적으로 둥지를 튼다는 새들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EBS 다큐프라임 - 수컷들’ 영상 시리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새덕후’라는 채널의 영상으로 연결되었는데, 초반에 발견한 ‘새덕후’의 영상은 ‘철새 이동경로에 물통을 만들면 생기는 일, 숲 속에 견과류를 놔두면 생기는 일’ 같은 영상이었다. 영상 제목 그대로 물통이나 견과류를 놔두고 새들을 관찰하는 관찰카메라였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특별한 주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새들이 찾아와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견과류를 부리로 쪼아 골라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해서 보게 되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명상하듯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새 영상을 계속해서 봐도 봐도 새로운 종류의 아름답고 귀엽고 멋있는 제각각의 매력을 가진 새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유튜브를 통해 ‘새며들었’고, 주변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다. 귀를 기울이자 새들을 더욱 알아가고 싶어 졌고, 결국엔 새 도감을 샀다. 내가 구입한 ‘한국의 새’라는 새 도감에는 총 573종의 새가 수록되어있다. 뮤지컬을 볼 때 쓰려고 사뒀던 저렴한 쌍안경이 마침 있어서 그걸 들고 무작정 공원이나 동네의 산을 올랐다. 본격적으로 탐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도심 속에서도 나무가 많은 공원 혹은 호수가 있는 공원을 가면 생각보다 많은 새를 볼 수 있었다. 또,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니 혼자 걷는 산책길이 지겨울 틈이 없었다. 보통은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끊임없이 듣곤 했는데, 새를 관찰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새소리를 먼저 들어야 했기 때문에 이어폰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혀 심심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들려오는 다양한 새소리가 그 자체로 풍성한 콘텐츠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인식하고, 알고 있던 새소리는 자그맣게 조잘대는 참새 소리, 땅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낮은 저음의 멧비둘기 소리, ‘까각까각’ 말하는 듯한 까치 소리 정도였기 때문에 동네 공원 뒷산에서 들려오는 대부분의 새소리가 새로웠다. 새를 관찰하기 시작하자 새롭게 알게 된 소리는 직박구리 소리, 박새 소리, 붉은 머리 오목눈이 소리다.


직박구리는 도심 속 새 중에서도 유독 목청이 좋다. ‘삐-삐요삐요삐’하며 볼 때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애가 직박구리다. 알고 보면 까치만큼이나 존재감도 크고, 흔히 보이는 새인데 왜 이제야 알았나 싶을 정도다. 박새는 굳이 산까지 가지 않아도 공원 근처에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참새만큼이나 자주 보인다. 회색 정장에 검정 넥타이를 두른 모습의 색 조합을 보여준다. 그뿐이면 단조로울 수도 있으나 자세히 보면 등에 미세한 연둣빛이 돌고 날개깃에는 흰색, 검정 줄무늬가 있어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럽게 입은 패셔니스타의 모습 같다. 박새는 아주 시끄럽지는 않지만 종종 ‘삐쮸삐쮸쮸’ 하고 높게 운다. 알고 보니 이 소리는 짝을 찾을 때 내는 소리라고 한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뱁새’라고도 알려진 새로 풀숲이 우거진 덤불을 좋아하는데, 주로 무리를 이루며 다녀서 한 마리를 발견하면 여러 마리를 함께 볼 수 있다. 속담으로만 익히 들어봤던 뱁새를 최근에서야 쌍안경으로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귀여운 모습은 정말 최강자라 할 만한 외모를 갖고 있다. 또, 그 귀여운 외모에 걸맞게 ‘삐-삐-삐-삐’ 하고 높게 운다. 무리를 이루어 동료(?) 새들과 날아다닐 때는 참새처럼 재잘대는 듯 울기도 한다.


아직 목소리의 주인을 직접 만나지 못한 새들은 훨씬 많다. ‘포로로’ 하고 나지막이 외치는 새, ‘휘익, 휘익’ 휘파람 불듯 노래하는 새, ‘삐익-’하며 소리를 내지르고 쏜살같이 그림자만 보여준 새, ‘찌르르르르르르’ 하고 울음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새도 있었다. 또, 제 아무리 많은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 한글이라지만 이 문자로 표현이 안 되는 소리들은 더 많았다. 소리를 통해 새를 듣고, 나무 사이사이에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앉아있거나 날아오르는 새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보물을 찾는 과정 같다. 새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볼 때마다 벅차오른다. 이토록 작고 다채로운 존재들이 나를 늘 둘러싸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탐조를 하고 있으면 어린 시절 보았던 ‘포켓몬스터’가 생각난다. 요즘 ‘포켓몬빵’이 부활하여 많은 사람들이 띠부띠부씰에 열광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림이 아닌 현실의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더 설레는 일이다. 탐조를 하는 이들은 자신이 본 새들을 언제 어디서 보았고 지금까지 몇 종을 보았는지 기록하며, 새로운 종을 발견할 때면 ‘종추’(자신이 발견한 새의 종류가 추가되었다 뜻)를 했다고 한다. 탐조는 띠부띠부씰을 수집하는 욕구와 비슷한 듯 다르다. 흔치 않은 종을 만나기 위해 열정과 모험, 어느 정도의 투자금(탐조의 경우 카메라, 쌍안경 등의 장비를 구입하거나 먼 곳의 철새도래지를 가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불사른다는 점에서 비슷하며, 탐조는 새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저 ‘지저귀는 존재’였던 새를 내가 ‘발견’하게 된다는 건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 값지고 멋진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새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며, 그 새와 나만의 어떤 고유한 추억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이 기대된다. 내일은 어디서 어떤 새로운 새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탐조를 지속하게 될지, 얼마나 더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본래 그렇지 않나, 덕질은 시작할 때가 가장 설레고 재밌다는 거.

탐조를 하면 평소에 흔히 보던 까치도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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