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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Apr 21. 2023

비건 라면 선택지를 늘려주세요!

라면 애호가가…

내게 라면은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너무 깊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언제부터 라면을 스스로 끓일 수 있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는 라면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이 집에 늦게 들어오실 때, 친오빠가 종종 끓여주기도 했었다. 조금 더 자라면서부터는 오빠가 나에게 라면을 끓이라 시키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가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나보다 고작 세 살 많은 친오빠와 둘이 알아서 밥을 차려먹어야 할 때가 많았는데, ‘보크라이스’라는 볶음밥을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양념으로 볶음밥을 해 먹거나, 간장 계란밥 아님 3분 카레, 짜장, 그도 아니면 라면이었다.


그때만 해도 잘 차려진 영양가 많은 식사와 간편하게 때우기 위해 차린 인스턴트 식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기름기 많고 자극적이고, 달거나 짠, 혹은 바삭바삭한 것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볶거나 굽거나, 냄비에 때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거나, 전자레인지에 몇 분 데우면 그만인 음식들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선택지도 얼마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맛’만 있으면 장땡인 식사를 문제의식 없이 꽤 오래 지속했기에 다른 요리를 배우고 싶은 욕구도 딱히 없었다. 라면의 다양성은 은근히 선택지가 넓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웬만해선 질리지 않았다.

 

고전적인 매운맛의 신라면, 다시마 국물과 오동통통하고 쫄깃쫄깃한 너구리 라면, 일요일엔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짜장 라면, 얼큰한 왕뚜껑 라면, 어느샌가 ‘건강’을 내세워 건더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광고하기 시작한 ‘맛있는 라면’. 라면을 먹을 때면 라면 강국인 한국에 태어나서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20대가 되고 나서 처음 가본 해외였던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라면을 먹어보았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라면이 맛있었다. 십몇 년 넘게 양도, 가격도, 맛도 한국의 라면에 길들여졌던 탓인지 유럽 여행을 갈 때는 컵라면을 두 개정도 캐리어에 담아 가곤 했다. 일주일 정도 여행하다가 유럽 음식에 질릴 때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컵라면 용기에 입에 대고 매콤하고도 얼큰한 라면 국물을 마실 때면 파스타나 버터로 기름졌던 속을 라면 국물로 매콤하게 쓸어내려,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식사 시간에 대체로 남들보다 무척 천천히 먹는 편인데, 면 종류만큼은 그나마 다른 이들과 비슷한 속도로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내가 천천히 먹는다는 건, 생각을 하면서 먹는다거나, 젓가락질이 느리다거나, 깨작깨작 먹는 게 아니라 그저 한 입을 먹을 때 오래 씹는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면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속도가 나는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면종류를 좋아하게 되었다. 먹을 때에 딱히 의욕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까지 먹고 있는 자신이 짜증 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그나마 덜 보면서 먹을 수 있는 게 면 요리이기도 해서.


하지만 라면을 즐겨 먹게 된 것 까닭에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 간편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쉽게 자극적인 냄새와 맛,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메뉴다. 아무리 힘든 날에도, 기력이 달리고 귀찮은 날에도 스스로 밥을 차려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라면의 유혹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부엌이 없는 공간에 살던 시기에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날은 더 많아졌다. 스무 살 때부터 삼 년간 살았던 기숙사에는 부엌이 없었던 대신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는 정수기와 전자레인지가 있었고, 일 년 동안 살았던 고시원에는 공용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항시 봉지라면과 밥과 김치가 채워져 있었다. 라면이 지겨우면 가끔 짜파게티나 나가사키 짬뽕으로 약간의 변주를 줄 뿐이었다. 그 덕에 특히나 혼자 먹은 기억이 많은 음식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그건 ‘컵라면’ 일 것이다. 대학 다닐 때, 시험기간에, 왕복 세 시간 출퇴근을 하며 첫 직장을 다니던 시기에. 웬만해서는 질리지 않을 강력한 짠맛과 매콤한 맛으로, 그 향을 떠올리기만 해도 침이 고일만큼 중독적인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하기도 했다.


라면 한 젓가락에 맥주를 한 모금씩 홀짝이며. 어떤 라면에 어떤 맥주가 어울릴지 세계맥주 여러 종류와 나름 페어링 해서 마시며 소믈리에처럼 진지하게 맛을 음미했던 때도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진짬뽕과 파울라너 헤페바이스(밀맥주)였다. 매콤한 진짬뽕의 맛을 밀맥주의 달달한 향이 깔끔하게 중화시켜 주는 듯하다. 또 다른 조합은 참깨라면과 라거 맥주이다. 참깨라면은 내가 알기로 국물이 가장 진한 라면이다. 계란 블록과 참깨와 마지막에 고명처럼 끼얹는 들기름까지 더하여 얼큰하면서도 고소한 특유의 맛을 낸다. 여기에 중간중간 씹히는 참깨가 재밌는 식감을 더한다. 이토록 찐한 라면에는 청량한 라거가 딱이다.


그러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은 이제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래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운동을 하면서 체지방률과 건강한 식사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비건식을 늘려가자고 마음먹으면서부터 라면을 먹는 빈도를 많이 줄이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선택지를 늘려나가는 것만으로도 라면은 더 좋은 음식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비건식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도 라면을 끊지 않아도 된다. 요즘에는 다양한 비건라면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건 버전의 맛있는 라면, 혹은 ’ 정면‘이라는 라면이 있다. 소고기 육수로 국물을 내지 않아도 충분히 얼큰하다. 오히려 뒷맛이 깔끔하여 더 당길 때도 있다. 라면을 먹고 나서 느끼게 되는 특유의 죄책감에서도 조금 자유롭다. 뭔가 아쉽다면 ’ 비건 만두‘를 라면에 추가하여 먹는다. 다만, 이러한 비건 라면의 선택지가 더욱 다양해지고, 더 많은 곳에서 유통되면 좋겠다. 비건 라면을 먹는 이유는 환경을 위해서이기도 한데, 온라인으로 밖에 구매할 수 없다면 택배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와 탄소 배출량도 생각해서 구매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삼양 같은 대기업에서 나온 ’ 맛있는 라면‘ 비건 버전도 동네의 작은 슈퍼에는 아직 없다. 그래서 라면이 정말 먹고 싶으면 결국 어쩔 수 없이 논비건 라면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 점이 안타깝다. 또한, 비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 채식‘이라거나 ’ 비건‘이 건강식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니 충분히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비건 간편식을 생산하는 분들, 조금 더 힘내주시길!


그나저나 비건식을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라면을 찾고 있는 나, 비건 라면의 선택지를 늘려달라고 글을 쓰고 있는 나, 정말 라면을 사랑하나 보다. 비건 라면을 더 다양하게,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더더욱 라면을 사랑하게 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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