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Feb 22. 2024

남 부럽지 않은 일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얗게 눈이 잔뜩 쌓여있다. 눈이 내리면 귀찮음이 앞선다. ‘차에 쌓인 눈 치워야 하네…’ 이럴 때면 지하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매끈하게 물 한 방울 안 묻힌 차가 지나가는 걸 볼 때, 그 운전자는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 길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차에 쌓인 눈을 치워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사실이다. 간 밤에 눈이 내린 날에는 길에 다니는 차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 눈의 흔적을 묻힌 차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고하고 매끈한 차들로.


  천장이 없는 지상의 주차장에 차를 대야 하는 나는 겨울에는 쌓인 눈을 치우고, 여름에는 조금이라도 차 내부가 덜 뜨거워지도록 앞 유리에 태양열 반사판을 끼워놓는다. 천장이 있는 곳에 차를 대는 사람들은 이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하루에 5분 씩을 더 아낄 수 있을 텐데… 생각하다가 내가 참, 배부른 불평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차를 소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고작 몇 계절 지나는 동안 이런 일이 귀찮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되다니. 바라는 것은 눈덩이 불어나듯 끝도 없이 커질 것이다. 차는 소유했으나 집은 소유하지 못한 지금은 천장이 있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나 언젠가 지하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는 날이 오더라도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개인 차고를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다음도 있을까? 아마 더 넓은 차고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부러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부서지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러한 부러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안다. 잠시 부러워할 수야 있지만, 부러워죽겠는 나머지 내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 것.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얼마 전의 나를 떠올리는 것. 눈의 흔적이 없는 매끈한 차를 보는 대신 몇 년 전에 지옥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던 나를 떠올린다. 바닥은 질척하고, 히터는 과하고, 패딩을 두껍게 입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숨 쉬기가 힘들어서 중간에 내려 집까지 걸어갔던 나. 버스를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한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했던 나.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 웃고 있었다.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회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걷는 길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다행이었고, 정 힘들면 길에 널려있는 공유 자전거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또한 걸으면서 듣는 팟캐스트가 재밌어서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단 5분에서 10분 정도만 차 위에 쌓인 눈을 걷어내고 차에 오르면 행복해진다. 약간의 낙차가 있기 때문에 이런 행복도 존재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눈을 쓸어내리는 동안 추웠기 때문에 히터를 틀어 둔 차의 내부가 더 안락하다. 장갑을 꼈어도 손이 시렸기 때문에 핸들 열선으로 뜨끈하게 데울 수 있는 핸들을 쥐고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부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부러움을 잊는 나만의 또 한 가지 방법은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들을 눈 여겨보는 일이다. 지금의 내가 즐길 수 있는 풍경을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눈을 쓸어내는 사이, 차 옆에 있는 나무 위에서 ‘째- 제- 제-’ 하는 새소리가 났다. 새를 좋아하는 나의 귀에는 새소리가 늘 트여있다. 곤줄박이였다. 곤줄박이는 눈이 쌓인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가 바닥에 내려와서 젖은 낙엽을 부리로 걷어내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곤줄박이는 오늘 같은 날 더 일찍 일어나서 허기를 채워야 했을 것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그 아이를 보니 눈 치우는 걸 귀찮아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토록 귀여운 곤줄박이를 잠시나마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일상이 남 부럽지 않다.

차에 쌓인 눈을 치우며 만난 곤줄박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