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는 표면적을 줄이려고 한다. 다시 말해 표면장력이 강해 기체와 섞이려 하지 않는다. 따라 거품은 쉽게 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맥주의 건조된 맥아는 탄산을 붙잡는 마음이 있다. 이런 단백질이 나를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둔다.
가끔 연락을 하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침 나는 그녀가 있는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고, 수월하게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오묘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그땐 몰랐던 새로운 모습도, 그리고 꽤나 비슷한 면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참을 걸었다. 좋았던 기억도 그렇지 않은 기억도 많이 떠올랐다. 이전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맥주집이 보였고, 기억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러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우리는 맥주와 피자를 시켰다. 피자는 6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꺼내기 쉽게 각각의 조각에 우리의 대화를 담아 두었다.
그중, 5번째 조각의 대화 내용을 꺼내본다.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만날 거 같아.
그래서 갑작스럽겠지만 말한 거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감정이 없어.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맥주의 거품이 단순간에 사라지며 탄산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었다. 말 한마디에 맥주가게의 공기는 산소가 아닌 탄산의 본질인 이산화탄소로 가득 찼고, 어떤 누구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삭막했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른 채, 맥주를 들이켰다. 감정이 없다는 비겁한 말과는 다르게 맥주는 달콤했고, 탄산은 아직도 톡톡 나의 마음을 긁어댔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감정이 없다는 비겁한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하지만 주워 담을 방법은 없다. 사실 그대로 그녀를 통해 감정을 찾고 다시 한번 감정을 쏟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말을 번복했다.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되었지만, 첫 모금은 목이 따갑지 않은가. 이어 달콤함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우리의 행복한 기억을 계속 적고자 한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아래 맥주집은 기억에 남을 것이고, 붙잡아 두었던 맥아의 마음은 표면장력아래 이산화탄소를 가둔 채 강력한 탄산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