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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구리 Jun 09. 2019

산정복기 - 속리산 문장대

즐거운 축제를 열자

해발 1,054m의 문장대의 이름은 운장대였다고 한다. 큰 바위가 구름과 맞닿아 보이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세조가 요양을 위해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시를 읊고 문장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사 코스를 통해 문장대를 향하는 길은 모든 자연의 경관이 어우러져 흐르는 것 같고, 정상에 오르면 하늘이 닿을 듯 탁 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문장대를 삼세번 오르면 극락왕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극락을 향해 힘찬 걸음

극락을 향해

손가락을 펴 몇 번째 문장대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세 번을 넘지 못한다. 어린 기억을 꺼내 다 더해봐도 엄마 등에 업혀 법주사까지 갔다는 이야기 빼고는 없었다. 그럼 극락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극락에 다 다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더라.

극락이란. 죽어서 극락에서 다시 태어남.
즉, 더없이 안락하고 걱정이 없는 곳이라 한다.

#1 식후경

속리산 명가, 버섯 전골과 불고기

계획에 없던 점심이다. 우리는 11시에 만나 산에 올라 밥을 먹기로 했었지만, 독하기 짝이 없는 우린 아무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 자연스레 식당으로 향했다. 속리산도 식후경이다.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상차림에 투 버너 위 불고기와 버섯전골,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잔씩 마셨다. 적당했다.


가득 찬 배를 내밀며 고독한 우리는 다 같이 망설였다.

속리산 조각 공원까지만 가자.
등산은 등산 모임 가서 해.

그러하다. 등산 모임이 아니다. 돈으로 얽힌 계같은 모임일 뿐이다.

날씨 맑음.

오르지도 않을 산을 앞에 두고 맛있는 점심을 먹곤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날 비 때문인지 날씨도 너무 좋다. 계같은 친구들과 함께 일단은 법주사 탐방로 입구로 향했다.


#2 문장대

법주사 탐방로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4천 원이다. 보은군 주민은 공짜라고 한다.

이를 악물고 해내는 거야.

우린 입장료를 내고 법주사를 들어가기로 했다. 소화는 시켜야 하니까. (국립공원 또는 박물관이라면 뭐든 현금이 아닌 카드도 됩니당.)


년 최소 한 번은 만나기 위해 계같은 모임을 진행하고, 즐거운 파티를 위한 최소한의 핑곗거리가 늘 필요했다. 이에 따라 만남에는 늘 언제나 이벤트가 필요했다. 사는 지역도 취미도 다른 우리에겐 등산이 아주 적당한 핑계였다.


세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곧 5월의 시간을 아직 적용하지 않은 벚꽃이 남아있다. 물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에 꽃은 져버리면 폭포에 휩쓸려가는, 마치 계절의 끝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법주사 코스로 오르게 되면 아직까지는 산책 코스이다. 여름이 오기 전 4월의 등산이라면 중간중간 벚꽃도 볼 수 있는, 여기까지는 편한 세조길 포장된 도로일 것이다.

오르고 오른 문장대

벚꽃을 지나 산 길을 쭈욱 따라 약 한 시간? 가량 오르다 보면 문장대에 도착한다. 중간중간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산속 깊은 매점에서는 막걸리 한 잔을 팔기도 한다. 한잔에 무려 3천 원.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여기까지 누가 들고 오시는 거예요?"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뻘쭘해서 뽕따 하나 사 먹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던 뽕따!!!!!!!!

아ㅡ근데 뽕따도 2천 원!


나를 제외한 친구들 모두 삿갓과 밀짚모자를 쓰고 등산을 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뽕따 아저씨는 우리를 삿갓팀이라고 불렀다. 여름이 오기 전이라면 꼭 뽕따를 사 먹기를 추천한다. 꽤나 시원하고 달콤하다. (여름엔 등산 못하거든.)

사실 다른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당 충전을 하고 나니 뭐 금세 정상에 올랐다. 문장대에 올랐으니 소원을 빌어볼까?

(소원은 아직도...)

내려오는 길에 산속의 호수가 보인다. 물고기가 엄청 많다. 물고기들도 저 호수 아래에 비치는 풍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상하 대칭의 속리산의 호수, 물고기들이 인정한 호수, 푸르다....


계같은 친구들은 다음에도 등산을 하자고 말한다. 저 밑에 상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3 은 축제

오늘의 만남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년 4월 27일.

모든 시간을 정해놓았다.

만약 그 날, 한 명이라도 오지 못한다면, 오지 못한 그 친구는 곗돈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 4명 중에서 3명이 불참하게 된다면 그날 할당된 예산을 모두 주기로 했다. 예산은 대략 40만 원. (교통비 포함), 속리산 정상 인증사진 포함 시 + 10만 원


뭐 무튼 꽤나 잘 먹혔다. 4명 정원 4명, 재 시간에 도착했다. 어느 누구도 늦지 않았다.


산에 오르고 나니.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문장대에 올라 극락을 찾아 떠나 함께 웃었고, 여태 시간이 흘렀음을, 우리가 대학을 졸업한 지 무려 4년이나 지났음을, 그리고 어떻게든 시간이 흘렀고 만나기를 기대하였음을. 대학생 시절 이런 기회가 없었음을 후회하고,


오르기 전, 우리는 "야 하산해서 빨리 고기나 먹자. 하나로 마트 가면 다 팔아. 미리 사두자"

실컷 떠들었다.


하나로 마트에는 뭐, 아무것도 없다. 이 글을 보는 모두에게. 속리산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면.


여기로 가자.


4명 기준 소고기 각 1인분 + 돼지고기 각 1인분 = 총 7인분, 남을 수밖에 없다. 카카오맵서 보은 정육점을 검색하고 찾아가면 사장님께서는 6시 이후부터는 누렁소 꿀꿀이라는 정육식당을 운영하신다고 한다. 우리에게 말했다.

"+2 만 판매하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있다. 그리고 우릴 기억하셨다.


 많이 시켜서 남았다기보다는 꽤나 많이 주신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멈출 수는 없으니
다만 우리 지금 여기서 작은 축제를 열자
...
많은 날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았기를
힘겹던 날 활짝 웃어준 한 장의 사진처럼
...
돌아보면 다시 그곳 빈손이지만
어렴풋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거야.

페퍼톤스 - 계절의 끝에서 中


오르면서 많이 들었던 곡이 있다. 최근 들어서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주 소년스러운 곡이다.

아직도 우리는 젊다. 스무 살 무렵에 만났으니 고작 서른이다. 다만, 대학생활과는 서로의 다른 모습이 보인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없음을 인지한다. 점점 늙어가고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1년에 한 번은 만나기로 늘 계획을 정한다. 그리고 언제나 축제를 열기로 마음을 먹는다. 우리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즐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만난 순간만큼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만난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음을.


계절이 지나가는 그 시간에 꽤나 즐거운 만남을 했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떠들며 등산을 하고, 산은 언제나 빈손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그 산을 오르며 왜 굳이 산을 왔을까 생각을 했지만, 산은 언제나 차려지지 않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어렴풋한 즐거움을 준다. 우리의 만남은 그것을 더 할 만큼의 시너지를 쌓았고, 더 큰 즐거움으로 이끌었다.


다음은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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