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남과여 2

by 오구리

붐비는 4호선을 타고 퇴근을 하고 있었어.

내가 타는 곳은 명동, 두 정거장만 지나면 강 아래 강남만큼 붐비는 동대문역사공원이 있지. 5호선과 2호선에서 환승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끔찍한 곳이었어. 숨이 꽉 막히는 지하철은 장 내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곳이었어. 망설일 시간도 없이 사람들이 내리고 같은 표정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말이지 오늘이 어제 같은 똑같은 일상이었어.


...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어. 한껏 멋지게 머리를 세우고는 카드를 찍었어. 지하철을 3대를 보내고서야 겨우 꾸겨탈 수 있었고, 봄이라는 날씨가 무색할 만큼 더운 날씨는 한껏 멋 부린 노력이 덧없게 느껴졌어. 우여곡절 출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물에 빠진 없는 생선 같았어. (사실 해물탕을 엄청 싫어하거든.) 출근과 동시에 퇴근이 하고 싶었고, 마침 오늘은 금요일이었어. 마침 차주 월요일도 쉬는 날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후 반차를 쓰고 퇴근을 하였어. 오후 반차는 전염병처럼 퍼졌고, 오늘만큼은 꼭 해야만 했지.

2시에 지하철을 타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어.


저녁의 지하철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이었어. 래도 앉을자리는 없었어.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기다며 창문에 비친 피곤한 얼굴과 인사했어. 유독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어. 흰 블라우스에 검정치마 그리고 검정 구두, 아한 귀걸이까지 마치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모습 같았어. 사각과 반사각을 정확하게 45도로 맞추고는 지하철 출입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았어.


한 달 전. 술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예정되었던 출장도, 친구와의 약속도 모두 사라진 그 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그 날에 그녀를 만났고, 하루의 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처음 그녀와 말을 했었다.


"술 왜 마셔요? 술이 맛있어요?"

"운수 좋은 날이거든요. 모든 약속이 사라졌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여유롭게 술이나 마시려고.."

그녀의 표정은 모든 약속이 다 사라졌는데, 도대체 뭐가 운수가 좋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도 대화는 이어져 갔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한다고 했다. 고 싶은 일이 뭔지 묻지는 않았어. 대충 짐작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 같았어. 리는 대화가 잘 통했어. 매일 책을 읽어야 하는 나는 그녀의 말에 적당히 받아쳤고, 계속 이야기가 오가면서 그녀는 예상대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어. 나는 그녀가 쓰고 있는 책 내용의 일부와 제목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제목의 리스트를 보여주곤 했어. 나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하지 않고 들어줬어. 이야기가 진전이 될수록 서로의 공통점이 보였고, 급기야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려줬어.


즐거운 나머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어. 다행히도 실수는 하지 않은 것 같았어.


이후로도 그녀와는 가끔 연락이 닿았어.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하더라고.. 다만 그 이후의 만남은 없었어. 다만 글 쓰는 이야기를 주제로 우리는 연락을 이어갔어. 만나기로 약속만 하면 운수 좋았던 날들은 나를 피해만 갔어. 점차 일상에 지친 탓인지 그녀와 연락은 옅어져만 갔어.


그녀에게 연락의 핑계가 생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어. 그녀가 받기를 기다렸고, 한 공간에서 그녀와 나, 전화기 속의 와 그녀 네 명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이상한 기대감이 들었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연결음이 치 심장박동 소리 같았어.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어.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


그녀는 가방 속 진동을 느꼈는지 핸드폰을 꺼내어, 잠깐 보더니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어. 그러고는 친구와 함께 있었는지, 작은 음성으로 친구는 말했어.


"누군데?"

"그냥. 술집에서 만난 사람."

"남자야? 남자겠지. 관심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야? 받아봐."

"잘 모르겠어. 갈리게 해."


그 말을 다 듣고는 다시 전화를 걸 수 없었어.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원고 뭉치의 제목에는 나에게 이야기했던 리스트 중 하나의 제목이 적혀있었고, 우리 출판사의 양식과 동일한 서류를 보았어.


받지 않는 전화를 얼른 끊고, 나는 우리 출판사에 제출된 그녀의 원고를 읽으러 다시 회사로 향했어. 반대 방향 열차를 타기 위해 동대문 역사 공원 역에서 내렸고, 원고를 다 읽고 그녀에게 자신 있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어.


가야 할 곳이 명확해진 이 순간. 순환하는 지하철 위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어. 대와 기쁨, 슬픔 감정의 갈망이 해소된, 오늘 더 이상의 고민이 없는 목소리로 어디로 가야 할지 말했어.


지금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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