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구리 Dec 01. 2019

Ep4 비가 안 와서 더 바삭한 막걸리 - 동래파전

#4 Count

열 손가락 펴 셀 수 있다면

남은 것을 가늠할 수 있다면

그때는 늦은 것이다.


열 손가락이 채워진다면

비워져 가는 것이 보인다면

그때는 늦은 것이다.


하나 둘 셋넷다섯

Count


어제 아래부터 모둠전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유난히도 내렸던 비는 몇 일째 오지 않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눈치는 더 이상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고작 3일이 지난 지금 그 들은 서로의 몸에 계란 옷을 입히고는 답십리로 향했다.


가게는 답십리신답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하여 '동래파전'


각자 버스와 지하철 타고 만나기로 했고, 먼저 도착할 것 같은 그가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가기로 했다. 중앙 차선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그 쯤에 버스가 지나갔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그녀에게 연락했다.

'혹시 답십리역 방금 지나갔니?'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는 얼른 이어서 오는 버스를 탑승하고는 따라갔다. 그들은 겨우 만났고, 언제나 발생하는 이벤트에 여의치 않다는 표정을 한채 옆구리가 아픈 듯 신답역 교차로로 걸어갔다.


가게 안은 총 6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꽤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 팀의 손님이 있었다. 그들은 기어코 먹고 싶었던 모둠전과 빠질 수 없는 막걸리를 시켰다. 메뉴판을 보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며, 자연스레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무슨 이야긴지 서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야, 갸도 가면 이제 몇 명 남냐?"

"너랑 나랑 춘식이? 몰라 한 3명?"

"5년 전에가 즐거웠는데... 우린 언제 가냐..."

"요새 만나는 사람 없냐."


오고 가는 옆 대화 속에 막걸리와 모둠전은 나왔다.

김치전까지 포함하여 총 9가지 전이 나온다. 막걸리는 지평, 장수 그리고 전주 알밤막걸리가 있었다. 막걸리가 나옴과 동시 옆 테이블에선 이야기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마셔."


메뉴가 나왔겠다. 그들도 마시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대화 속 '12천 원에 이 정도면', '비가 안 와서 더 좋다' 쓸데없는 소리에 한 잔씩 비워 나가며 일정한 템포로 한 마디씩 외친다.

'막걸리 한 병만 더 주세요.'

오고 가는 빈 막걸리 병 속에 많은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 구이와 파전을 벗 삼아 찌그러진 잔에 막걸리를 한 사발 따르고서는 먹는 상상을 한다. 빈 막걸리 병에 그들의 염원이 담기길 바라며, 하얗게 뽀얀 막걸리를 들고 한 잔 마시고는 긴장이 풀어진다. 다시 노릇하게 구워진 분홍 소시지를 먹는다. 뻔히 아는 맛이지만, 가게에서 먹는 모둠전은 뭔가 다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깻잎전까지 이어먹는다. 깻잎전이 가장 맛있다고 서로 외친다.


바닥에 내려놓은 이야기로 꽉 찬 막걸리 병을 셀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한다.

 

Count

하나 둘 셋넷다섯

취했다. 맛있다.


Information

영업시간: 15:00 - 01:00 (일요일 휴무)

메뉴: 모둠전 외 분홍 소시지 등, 막걸리 (장수, 지평, 알밤)


#모든 이야기는 해당 장소를 방문한 것 외에는 픽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3 저녁회식보다는 점심회식 - 마르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