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구리 Nov 23. 2019

Ep3 저녁회식보다는 점심회식 - 마르셀

#3 Share

식탁에 마주 앉아

어색함을 감추려

먼저 말을 건네

어떤 말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바라만 봐도 좋은 순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 틈에 스며든 어색함


함께하면 더욱이 즐거운

Share


어떤 사람은 한 번을 먹어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고, 반면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후자에 가까웠다. 최근 회사에선 저녁 회식보다 점심 회식을 선호하고 있다. 사내 분위기도 퇴근 후, 워라밸이라고 자기 시간을 보장하는 형태로 바뀌어 간다. 그래서인지 점심 회식을 자주 하곤 한다.


6달 전 첫 번째 보직 막내에서 벗어난, 이제는 메뉴 선택권이 없다. 일하는 것보다 메뉴를 선택하고 예약하는 것이 어려웠던 그에겐 아주 좋은 일이었다. 반면 새롭게 들어온 여직원은 메뉴를 선택하는 일이 행복해 보였다. 처음에는 몇 번 물어보고 선택하였지만, 아무도 응답이 없어 이제는 스스로 골라 예약을 해둔다. 그는 그저 따라가면 된다.


점심 회식을 위해 20분 먼저 출발하였다. 한국은행 뒤편에 있는 마르셀이라고 들었고, 그저 양식이라 했다. 지나가다 보았던 북창동 먹자골목 방향이었지만, 레스토랑답게 호텔과 함께 공존하는 가게 었다. 명동 남대문답게 여행객들로 꽤나 붐볐다. 그들은 가게로 드디어 들어갔다. 웨이터는 예약석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어제 예약하신 대로 주문하시겠습니까?"


메뉴판을 보면서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어색한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미리 주문한 여직원들이 미웠다. 이제는 피할 방법이 없다.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지 않으면 업무 야기가 오갈 것이 분명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은 그는 고민에 빠졌다.


사람들의 대화는 시작됐다. 이쪽저쪽에서 업무 야기, 시시콜콜한 농담들이 오가는 와중에 그는 고요했다. 사람들은 요새 일이 바쁘시냐고 그에게 물었다.


대답을 할 찰나에 첫 메뉴가 나왔다. 모두들 조용해졌다. 한가하던 서로의 손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묘하게 맴돌던 어색함은 누그러졌다.

그는 처음 입을 열었다.

"팥죽이 나왔네요."

웨이터는 오징어 먹물 리조토라고 말했다.

그의 한마디에 모두들 정색을 하고는 적막이 돌았다. 이어 그릇과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탄식의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마르게리따 피자가지 라자냐, 크림 파스타가 이어 나왔다. 그는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말했다. '회식으로 무슨 팥죽을 먹냐?' 그는 피식 웃으며 '사실 오징어 먹물 리조토야.' 답장을 보냈다.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피식 웃고는 고개를 들어 먹으려고 한 순간,  휑한 접시와 마주했다.


메뉴 7개 / 인원 9명 = 인당 0.8 인분

웨이터가 물을 채워주려 온 횟수 = 대략 20회

공복 해소 대상자 = 5명?


누군가는 물만 마셨을지도 모른다.


음식을 다 먹고 모두들 나왔고, 서로 맛있었다고 극찬을 한다. 그도 맛있는 것을 알지만, 아무 말 않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길 건너편 국밥집을 향했다.


함께하면 더 즐거운 1인 1 메뉴

No share


Information

영업시간:  11:00 ~ 22:00

메뉴: 가지라자냐 외 예상대로 맛있는 양식 메뉴들


#모든 이야기는 해당 장소를 방문한 것 외에는 픽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2 한 여름날엔 경복궁 야간개장? 커피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