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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Oct 07. 2022

야, 너두? 어! 나두!!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너와 나, 그래서 우리에게

나는 17년 차 조직인이다. 나의 조직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공무원 조직이자, 나 잘난 박사들이 차고 넘치는 거대 경제부처이다.(똘똘이 스머프 같이 '나 잘났음'의 포스를 안팎으로 팍팍 풍기는 동료, 상사, 후배들을 나는 '나 잘난 박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의 MBTI는 INFP이다. 나는 정말 INFP인가? 하며 세 번을 더 테스트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리고 INFP의 특징으로 서술되는 글을 읽으며 부정할 수 없었다.


아.. 그렇네.. 저 특징들이 INFP라면 나는 INFP가 맞네..라고 저절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INFP 잔다르크형

  - 현실감각이 둔하다. (가계부를 소설로 쓴다)

  - 몽상가적 기질이 많다.

  -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규칙을 몸서리치듯 싫어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적인 생활을 싫어한다.

  - 논리적이지 못 하고 감정적이다.

  - 언어, 문학, 상담, 심리학, 과학, 예술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 출처: 친구가 보내준 글(mbtitest.kr)


물론 위에 쓴 특징 외에 INFP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


  - 이해심이 많고 관대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에 대하여 정열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 노동의 대가를 넘어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 이해와 인간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기를 희망한다. 등등..

     * 출처: 친구가 보내준 글(mbtitest.kr)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서 INFP의 장점은 크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반사회적 성향이 없으며 정열과 신념, 인간복지 등이 언급되니 공직자로서 기본은 채운 정도이다. 그러나 경제부처는 뜨거운 가슴보다는 냉철한 머리와 합리적 논리를 덕목으로 한다. 나의 조직에서 INFP의 특징은 치명적이라 할 만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이제는 인정하자.
   나는 나의 조직과 맞지 않는다.
   아니다. 더 솔직해지자.
   아~ 그래서 내가 이 조직에서 출세를 못 하는구나!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없는 통증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 명의를 만나 병명을 알게 같았다. 병명을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다. 병증의 원인을 알았고 이제 치료법을 찾으면 되니까. 그래서 살짝 희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모든 병이 치료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난치병과 불치병도 존재한다.


조직과 맞지 않는다면 나는 이 조직을 떠나는 게 치료인 건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민할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했다.

그 고민에 도움이 될까 싶어 공무원연금공단에 들어가 '나의 예상 연금'도 확인했다. 수급 시기와 금액을 보며 괜히 확인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른 측면에서 도움이 될까 싶어 재테크에 열을 올려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 없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부모 죽인 원수마냥 육두문자를 날릴 만큼 계좌 수익률은 처참하다.


고민은 깊어지고 마음은 공허해져 갔다.

현실적으로 이 조직을 떠날 수는 없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20대의 만 3년을 꼬박 투자하여 얻은 자리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청춘들이 눈물과 애증으로 젊음과 맞바꾸며 도전하는 자리이다. 훌훌 털고 떠나기엔 조직에서의 위치도 높은 편이다. 헛삽질도 숱하게 하지만 아주 가끔은 금덩이를 캔 기분을 느끼는 보람된 업무도 있다.(여기서 방점은 금덩이인가.. 아주 매우 가끔인가..) 이 조직이 나와 맞지 않을 뿐 값어치 없는 조직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겐 매우 고맙고 감사한 조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계좌를 스쳐 지나가는 월급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그 월급 덕에 사람 구실을 하고 살아왔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옆에 있는 배우자가 나와 맞지 않다고 바로 이혼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와 조직도 마찬가지다. 나와 나의 조직 사이에는 그간의 역사가 있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어 있다. 조직이 나와 맞지 않다고 때려 접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 아직은 함께 가자, 나의 조직아!!


 하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고맙긴 하지만 좋지는 않아.
좋아하지 않지만 떠날 수도 없는 못 난 나를 이해해줘


이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조직원이 나뿐일까? 우리 조직에도 숱한 내가 있지 않을까? 다른 조직에는?

나만 빼고 모두 다 적성에 맞는 조직에 소속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저런 측면에서 나와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시 공부할 때 신림동의 경제학 인기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험에 떨어진 친구한테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뭔 줄 아세요?
술 사주기? 좀만 더 힘내라고 위로하기? 넌 할 수 있다고 응원하기?
아니요!
같이 시험에 떨어져 주기!!
단언컨대 시험에 떨어진 친구의 존재만큼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건 없습니다.


역시 최고의 위로는 동행이다. 

나의 쉽지 않았던 17년이 다른 이에게는 어깨 걸치고 함께 가는 동행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평균 수명 80세를 훌쩍 넘고, 2040년이면 인구의 1/4이 노령층이 된다는 한국사회에서 조직생활의 끝은 소원하기만 하다.


고맙지만 좋지는 않은 조직과의 동행에 그대들도 동행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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