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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단상] 아기를 낳고 바뀐 것들

- 개인능력치는 업그레이드, 그 외 대부분은 디그레이드

by 쿨자몽에이드

아기를 낳으니 인생이 달라졌어요.


많이 들어봤다.


달라졌다.


그리고 알겠다. 저 말이 몹시도 중의적인 표현이란 걸.


좋게 달라진 것도 있고 안 좋게 달라진 것도 있다.

그런데 이 변화의 특징은 너무나 좋게 달라진 것이 많아도 안 좋아진 것을 상쇄시키지 못한다는 것.


<좋아진 것>


1. 귀하의 능력치가 향상되었습니다.


나는 대체로 단번에 창의적이기보다는 배워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두뇌회전이 팍팍되는 스타일이 아니고 좀 익혀서 고민하고 서치 해야 아이디어가 생각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초반에는 좀 자신 없었다. 그러나 잘 배우는 편이고 좋은 스승, 멘토, 사수를 만나면 능력치가 아주 빠르게 향상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알게 됐다.

나는 아기에게 필요한 뭐든지에 대해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바로 실행에 옮기며 최선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자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찾아내고, 머리는 확확 돌아갔다. 무거운 것들도 필요시 바로 든다. 아기가 10킬로 가까이 되는데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일도 한다.


아기를 낳고, 전반적으로 내가 몰랐던 능력이 발현되고 있다.


이런 능력의 발견으로, 나는 앞으로 일할 때도 거침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2. Special thanks to 나의 원가족


아기를 낳고, 엄마아빠 그리고 내 형제와의 관계가 엄청 좋아졌다.

원래도 좋긴 했는데 엄마아빠는 나날이 기아처럼 말라가는 내 걱정에 음식 해다 나르시고, 틈나는 대로 아기를 돌봐주러 오신다. 나의 형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기를 너무나 이뻐하고 잘 돌봐준다. 셋 다 아기를 너무나 이뻐하고 적극적으로 잘 놀아주고, 이쁘다고 칭찬해 주고 나에게 쉬라고 배려해 준다.


나는 아기랑 남편을 우선시하며 항상 양해를 구했는데 나의 원가족은 오로지 나를 위해준다.


아기를 낳고 나는 부모형제의 깊은 사랑을 전에 없이 깊고 넓게 느끼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3. 사랑이 샘솟게 해주는 나의 아기가 내 곁에 있다.


사랑에 빠질 때 느끼는 그 기분을 아기가 늘 느끼게 해 준다.


아무리 피곤한 아침이라도, 어떤 순간에도 아기가 씩 웃을 때, 큰 눈동자에 나를 가득 담고 바라볼 때 설레고 행복하다,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되는 느낌이 직접적으로 든다.


아기를 안을 때마다 너무나 행복하다. 아기는 정말 천사 같다.



<안 좋게 변한 것들>


저 3가지 외의 모든 것이 안 좋아진 것 같다;


1. 건강, 외모, 체력


감기에 걸리지 않던 내가 이제 조금만 피곤하면 감기몸살에 시달린다.


눈 밑에는 해골처럼 깊숙이 들어간 다크서클이 없어지지 않고 9킬로도 넘는 아기를 한 손으로 안고 온갖 일을 하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서 입술도 부르트고 폭삭 늙었다.


흰머리도 엄청 늘었다. 아마 절반은 흰머리가 된 것 같다.


2.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이별하며 살고있구나-누구랑? 남편이랑!


남편은 돌봄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나니 이기주의도 이런 이기주의가 없다.


내가 모든 것을 우리가정에 투입하고 희생하니 그걸바탕으로 자기는 총각처럼 살려고 한다.


아기조차 제대로 돌보지않는다. 오로지 자기가 우선이다.


우리아빠께 푸념했더니 아빠가 그러셨다


"그래도 잔소리하지마라, 남자는 잔소리자꾸하면 정떨어진다"


????????


첫째, 나는 잔소리한적이 없다.


잔소리는 불필요한 잡소리를 가리키는데, 아기 잘 잡아서 머리 쿵하지 않게하라, 아기에게 점퍼도 입히지않고 추운겨울에 밖에나가기에 아기방한에 힘쓰라 등등 당연히 해야한 것을 하라고 얘기하는게 잔소리인가? 그걸하지않아서 아기 멍들게하고 감기걸리게했는데?


둘째, 정떨어진다고요? 저는 이미 떨어지기 직전인데요?


저말을듣고 아빠께 말했다.


"?? 저는 이미 정 엄청 떨어졌는데요?아빠~남자만 사람이에요? 여자도 정떨어져요ㅋㅋ"


남편에게도 말했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굴거면 난 이혼할생각이 있다고. 그리고 목숨걸고 애를 낳은 것도 나고, 모든 걸 희생하면서 애를 키우고있는 것도 나니까 너는 애에 대한 아무권리가 없어야 맞다고.


예전에는 아기낳고 바로 이혼하는 경우에 대해 의아했다. 그런데이제는 알았다. 아기낳고 드러나는 본성, 그게 진짜라는 걸. 그리고 아기낳고 2년간 부부사이가 돌이킬수없게 파탄나거나 동료애로 더 단단해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걸.


오늘도 나는 몸살이났다. 이는 남편탓이컸다. 남편이3일간 자기가 하고싶은 걸 하느라 집을 비워 오롯이 아기를 혼자봤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면 다음 순서는 아기다. 그걸알면서 자기 욕심을채우고 아기를 돌보지않는다. 아기가 운다고 또 뒤로 나앉아있어 오늘 또 내가 아기를 재웠다


그래도 반성없고 오히려 본인 스트레스가 우선이다.


그래서 오늘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이별하며살고있다.


이대로라면 미래가 그려지지않는다


3. 커리어 붕괴


내가 얼마나 내 일을 좋아하고 못하게되어 아쉬워했는지 누구보다 남편이 잘 안다.


나는 진짜 다 양보했다.

아기를 낳고 키우기위해 모든 걸 접었다.


다시 처음부터 쌓아올려야한다.


4. 기억력 극한감퇴

Epi 1.

어느날아침, 문득 따뜻한 물을 마시고싶었는데 마침 전기포트에 물이 끓고있는거다. 시터이모님이 물을 끓였구나, 싶어서 말했다


끓여놓으신 물, 저 한잔만 마실게요!


이모님이 말했닺


물,..제가 끓인거 아닌데요 방금 끓이셨잖아요..


.......

Epi 2.


나는 시판이유식을 먹인다. 어느날, 이유식이 없는거다.


분면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었는데...


이틀 뒤 부엌 벽장에서 이유식 소분한걸 발견했다..


그리고 오디오 리모콘도 분실해서 아직 못 찾았다.


기억력이 정말 극한으로 감퇴되었다.이건 과학적으로도 밝혀졌는데 임신기간부터 기억력은 계속 쭉 감퇴된다고한다. 기억력의 일부를 아기에게 집중적으로 쓰라는 의미같다


그래서 가끔 겁난다.


이 상태로 복직하면 일을 할 수 있을까?


일하는 모든 엄마들이 위대하다는 건 이런 끝없는 능력치의 감소를 딛고 자기일을 해내기때문인 듯히다.


뭐 그외에도 좋게변한점 3가지 외 모든것이 안 좋게변한것같다.


좋게 변화한 점이 무척이나 중대하고 큰 부분이어서 저 부분만 생각하고 남은 생을 살수도있을정도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걸로안좋아진 점을 상쇄시킬 수는 없는 것같다


커리어, 건강 등은 이후 수년간 피땀흘리며 어느정도 개선가능한데..남편은 개선가능한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으로 돌아가면 다시아기를낳겠냐고 묻는다면 낳겠다고 답하겠다


다만 아기는 지금 우리아기로, 남편은 다른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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