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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단상]엄마의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게되다

-너무나 사랑하면 귀찮음이 사라진다

by 쿨자몽에이드

엄마는 너무 피곤해보일때에도 가족을 위해, 특히 자식을 위해 과일도 깎아주고 짐도 싸주고 옷도 챙겨주고 최대한 챙겨주려했다.


반찬도 어떻게든 해서 보내줬다.


한 번은 물었었다.


"안 귀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엄마는 말간 얼굴로 대답했다. "안 힘든데? "


나는 생각했다. 힘들지만 하는거지 안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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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천원샵에서 스텐집게를 샀다. 아기 물건 삶을 때 건져올릴 용도였다.


스텐은 좋은데 연마제 제거가 너무너무귀찮다. 아기주방놀이용품을 스텐으로 샀다가 끝없는 연마제에 냅킨 한 롤을 다 썼고 내 팔도 떨어져나갈 뻔 했으며 그 기름묻은 신문지, 냅킨정리하고 기름 잔뜩발린 스텐들의 기름 씻어내느라 몹시 귀찮고 힘들었던 게 얼마 전이다.


그러나 환경호르몬을 생각하면 스텐을 사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젖병을 삶고 건져올리려다 아, 연마제 있으면 안되는데 싶어서 다른집게로 건졌다. 옆에있던 내 형제가 말했다. 그런 집게에도 연마제가 있을려나? 그냥써도 되지않아?


오늘 나는 무척 피곤했다. 그런데 설거지가 끝날무렵 집게가 눈에 들어와서 순간 갈등했다.

음식 집을 것도 아닌데 그냥쓸까?


하지만 아기꺼니까 닦아야했다.


기름을 꺼내고 냅킨에 묻혀 집게를 닦기시작하며 생각했다.


연마제가 나오면 닦는 보람이 있으니까 좋고

안나오면 연마제가 안 묻어있는거니까 좋지. 이러나저러나 좋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신기했다. 나는 그닥 낙천적인 성격이 아닌데 이 긍정회로는 무엇?


그건 긍정회로라기보다는, 힘들어도 우리 아기를 위해서 닦는거니까 어떻든간에 보람된 일이다 싶었던 거였다.


진짜 몸이 힘들어도 아기를 위해 하는 일은 힘든데 안 힘들다. 모순같지만 말그대로 힘든데 안 힘들다!


우리를 위한 일은 늘 기꺼이 안 힘들다며 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듯한 날이다.


힘들지만 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위하는 그 마음이 힘듦을 덮어 진짜 안 힘든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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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중학교2학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학교를 다녀오니 오빠가 집에 먼저 와 있었다. 오빠랑 엄마는 이제 막 시원한 수박을 나눠먹은 뒤였다.


수박있네, 나도 수박먹을래요 나도 주세요 했다.


엄마는 먹어라. 하셨다. 니가 잘라서.


엄마는 아들을 특별히 사랑했다. 항상 그랬기때문에 그에대해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부당함을 피력했었다. 엄마는 편애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항상 주장한다.(편애가 있었지만 나를 사랑하지않은 것은 아니다. 아들을 더 사랑하고 그걸 숨길 수 없을만큼 표 내는 바람에 들켰을 뿐!)


똑같이 하교하고 왔는데 오빠는 챙겨주고 같이먹고, 나에게는 혼자 알아서 먹으라는게 서러웠다.


그래도 수박은 먹어야겠으니 내 키보다 높은 냉장고 칸에서 커다란 수박을 꺼내 들다가 너무 무거워서 땅에 떨어뜨렸다. 수박은 와장창 박살이 났고 부엌은 엉망이되었다.


수박 깼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나는 혼나지않았다.


(지나고보니 엄마도 인간적으로 미안했겠지.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진심으로 아들에 관해서는 귀찮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 날 나에게 수박을 주는 일은 귀찮았던 것이다.


아들에 대한 사랑의 힘이 어떤 귀찮음도 어떤 힘듦도 압도해버린 것이다.


반면, 나에 대해서는 힘들고 귀찮음을 잊게 할 만큼의 사랑은 없었던 것이다.


사랑의 힘이란.


지금에 와서도 저 일을 기억하는 건 당시 무척 서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저 일이 서운하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감정이 있는 것이고 더 정이가는 존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그리고 어느 날엔가 나는 진정으로 엄마의 아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숭고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응석을 받아주고 이런 것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정말 깊고 넓은 숭고한 사랑을 목격하면서 경건함마저 느꼈다.


그 후로 엄마의 편애에 대해 별 신경쓰지않게 되었다. 청소년기와 다르게 나도 나의 애정결핍을 채워줄 여러요소들을 형성해놓았기 때문이기도하지만 그 숭고한 사랑에 감동하여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랑의 힘이란.


여담으로, 나는 아이를 하나만 낳을 생각이다.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우리 아기에게 " 엄마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제일 소중하고 너를 제일 사랑해"라고 거짓없이, 숨김없이, 어떤존재의 눈치도 보지않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우리아기를 제일 사랑하는 탓으로 인해 상처받을 존재가 생기지 않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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