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기존에 다니던 미용실 디자이너가 그만두어 그냥 아파트 상가에 있는 미용실에 가 봤다.
머리카락이 덥수룩 해보여 자르러 간 거였는데 이미 내 머리카락은 숏컷 상태였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더 자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숏컷을 좋아하고, 아기가 있어 머리손질하기도 귀찮으며 어차피 복직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고 부모님 외에는 외부인을 만날 수도 없는 형편이라 머리스타일이 좀 이상해도 나는 짧은게 좋다 뭐 이런 설명들을 하다보니 내가 육휴중인 아기엄마라는 정보를 디자이너에게 자연스레 알리게됐다.
그러자 디자이너도 자기 얘기를 하면서, 본인은 결혼한지 2년정도 되어 아기를 낳으라는 양가의 압박이 있지만 미용사라는 직업상 임신해서는 일을 하기가 어렵고 출산하고 일을 놓게되면 감을 잃어 다시 복귀하기도 어렵다고 하던 와중에 갑자기
'근데 제 동생이 회사다니는데, 여직원들 뽑아서 가르쳐놓으면 육휴해버리고, 육휴갔다가 퇴사해버리고 육휴하고 월급나오는거는 홀랑 받아먹고 그런다던데요~직장인들은 좋겠더라구요~우리는 그런것도 없는데~'
?????????????
뭐지, 육휴 중인 나한테 저 소리는??? 여직원들은 좋겠다고?? 홀랑 받아먹는다고?????
수혜만 입고 나른다고????
#2. 며칠 전에는 아는 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 여자변호사가 1년 육휴갔는데~~저런 혜택 진짜 드문데~~"
육휴를 '여자'직원들이 받는 '혜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네??
그래서 일단 우리부부(A와 B)를 들어, 팩트체크에 들어간다. 누가 수혜자인지.
A 와 B의 일상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비슷했다.
<아이를 낳기 전>
A
기상한다.
출근한다.
일하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즐겁게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산책하고 화장실가고 낮잠잔다
다시 오후근무
퇴근
집에와서 청소
B가 오면 함께 저녁식사
B와 산책 또는 운동
돌아와 책보다 잔다.
B
기상한다.
출근한다.
일하다 점심먹고 산책한 후 낮잠잔다
다시 오후근무
퇴근
저녁식사
설거지
A와 산책 또는 운동
돌아와 유튜브보다 잔다.
<아이를 낳으면서>
A
- A는 직업상 특정커리어가 있는데, 그 부분을 포기해야 임신출산이 가능한 정도의 상황이어서 원하던 커리어를 단절하고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직장으로 이직하였음. 그래서 그나마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를 이용할 수라도 있게 되었음
A
아침 7시 기상.(아기가 깨기 때문에 컨디션과 상관없이 기상)
기상하자마자 육아시작(아기 기저귀간다-분유 타서 먹인다-세수시킨다)
다 먹고 씻은 아기를 베이비룸에 넣어두고 집청소 시작(청소 뿐 아니라 아기 침구털기, 이불빨래, 아기가 가는 모든 곳을 깨끗이 닦기)
아침을 서서 급히 먹거나 굶는다.
아기랑 놀아준다.
아기를 재운다
아기가 자는 동안 급히 화장실에 갈때도 있고 못 갈 때도 있다.
아기가 깨면 다시 놀아주고 기저귀를 간다.
아기 이유식을 준다.
치운다. 씻긴다. 다시 놀아준다.
분유를 먹인다.
놀아준다
재운다. 자는 동안 같이 있어야 한다(밥을 급히 먹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잘 깨기 때문)
아기가 깬다. 기저귀를 간다.
이유식을 준다
치운다. 씻긴다.
B가 온다.
그런데도 계속 A가 아기를 놀아줘야한다.(놀아준다는 것은 아기에게 계속 호응해주는 것도 있지만 아기가 잡고 서면서 뒤로 넘어질 수 있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가기때문에 계속 따라다니면서 케어함을 의미)
A와 B가 교대로 밥을 먹는다
A와 B가 함께 아이를 목욕시킨다.
A가 목욕뒷정리로 화장실청소를 하고 세탁물을 정리해서 세탁기를 돌린다.
나와서 아기 마지막 분유를 탄다.
아기 이를 닦아준다.
아기와 놀아준다.
아기를 재운다.
아기 장난감을 닦고 정리한다.
잔다.
(다음날도 계속 반복)
- 화장실도 원할 때 갈 수 없고, 밥도 제 때 먹을 수 없다.
- 통잠을 자본 적은 13개월 째 10회미만, 잠이와도 낮잠도 자기 어렵다.
- 아기가 태어나고 친구를 만나거나 개인외출을 한 것은 5회정도
- A는 아기를 낳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커리어를 변경했으며 그래서 단절이 생김, 인간관계 단절
- A는 임신기간 중 지병을 얻음
- 누군가와 마주보고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 일은 거의 없음. 늘 서서 먹거나 빨리 대충 먹거나 굶음.
- A는 아기를 돌보느라 11개월만에 체중이 11킬로 감소
<B의 일상>
일어난다.
출근한다.
일을 한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잔다.
오후 업무를 하고
퇴근하여 집에온다
아기랑 잠시 인사하고 안아주면서 오자마자 간식을 먹는다
씻는다
A와 교대로 밥을 먹는다(아기랑 5분정도 몸으로 놀아줌)
베이비룸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면서 아기옆에 있는다.(아기랑 적극적으로 놀아줘야하는데 대부분 하지 않음)
A와 함께 아기를 씻긴다.
아기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채운뒤 A가 타준 분유를 먹인다.
아기랑 10분정도 놀아준다.
가습기 물을 채운다
A가 아기를 재우는 사이 소파에누워서 유투브를 본다.
설거지를 한다.
야식을 먹는다
계속 유투브를 보다 아기 베이비룸을 정리하고 아기 장난감을 닦기로 했지만 기분에 따라 그냥 자버린다.
- B는 가고싶은 해외출장, 하고싶은 사업을 원하는대로 다 가고 다 한다. 커리어 단절 없음(필수출장, 필수업무가 아니었음)
- B는 아기낳고 체중이 5킬로이상 증가
A는 육아휴직 중이고 B는 그냥 자기 삶을 산다.
A의 삶에는 자기시간이 없지만 B는 낮잠도 자고, 화장실도 가고, 동료와 대화도 하고, 산책도 한다.
A의 커리어는 단절되었지만, B의 커리어는 계속되고있다.
A가 B에게 육아휴직을 권하였으나 B는 절대 싫다고 버티는 중이다.
A는 나이고, B는 남편이다.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남편의 삶은 유투브 볼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 말고는 뭐가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기를 낳아서 건강이 망가져 감기를 달고산다. 나는 임신기간동안 남편에게 고액의 헬스PT를 선물했다. 아기낳은 나는 분명 체력이 망가질 것이니 아빠는 임신기간동안 체력보강에 힘쓰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기도 낳지 않은 남편이 왜 출산후 더 피곤하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나는 24시간 풀근무중이고 쉬는 시간은 거의 없다.
심지어 시터를 고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는 풀근무중이다(시터가 와도 그 시간에 나는 청소를 하고, 아기 이불을 털고, 세탁을 하고 아기 이유식 고기를 만들고 이유식을 준비해서 주고 아기를 함께 돌본다. 아기가 엄마를 찾기 때문에)
남편은 아기가 태어났지만, 아기와 놀아주는 시간은 하루에 30분도 되지 않는다.
남편의 일상에 아기가 개입되는시간은 1시간 남짓, 그것도 나와 함께 시키는 목욕, 나와 함께 하는 외출.
우리, 즉 나와 남편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남편의 삶은 거의 그대로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고있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어린아기가 있는데 남편의 삶은 그대로고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면, 아기는 저절로 크는 걸까.
아기는 나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크는것이다.
아기는 우리의 아기인데, 아기는 거의 나혼자 키우는 셈이다.
나의 본업은 상당히 치열하고 스트레스풀한 일이어서 보통 2-3년을 쉬지않고 일한 경우 대부분 거의 반드시 휴식기를 가지곤한다. 그런데 나의 본업이 비교도 되지않을만큼 힘든일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느낀다.
내 육아 휴직의 최대수혜자는
바로 남편이다.
내 피와 살과 뼈로 낳은 아이인데, 성씨는 자기성씨를 따르고 기르는 것도 내가 기르니 자식이라는 존재를 날로 먹는 남편이 육아휴직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육아휴직을 가리켜 '여자직원들이 날로먹는 혜택'이라고 말하지 말라.
여자직원들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 아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우리노후가 뒷받침되는 것이니 욕할 일이 아니다. 날로먹으며 자식도 얻고, 아빠가 되어 어깨가 무겁겠다며 격려도 받고, 본인의 삶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않으면서 아이를 기르는것에 대해 칭찬만 받지 욕은 먹지않는 그들..바로 육아휴직의 단물을 빨아먹는 것은 그 여직원들의 남편들이니.
사실, 육아휴직은 혜택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당연히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욕을 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키우러 간다고 욕을한다.
아직 어린 아이를 낳기만 하고 직접 돌보지 않을 방법이 있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엄마부터 욕을 하면서, 육아 휴직 그 짧은기간 아이를 키우러 가는 것마저도 엄마들에게 혜택이라고 말한다.
낳은 아이를 1년남짓 직접키우는 게 혜택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혜택이라고 한다면 그 혜택은( 여자든 남자든) 육아휴직자가 보는 것이 아니라 육아휴직자의 배우자가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휴직자는 그 기간동안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뼈가 으스러지도록,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며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