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평등에 민감한 아이였다.
엄마는 항상 오빠가 먼저 나를 괴롭혀도 오빠편을 들거나 오빠와 싸우면 나도 같이 혼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가 괴롭힘을 당했고 가만있다 당했는데 같이 혼나야하지?
또 엄마는 내게만 집안일을 시키고, 내가 나서서 하지않는것에 불만을 표했다.
명절에도 여자들만 일했다. 남자들은 티비를보며 만들어진음식을 가져가서 먹었다.
우리엄마가 뼈빠지게 만든 음식도 좋은건 남자들만먹고 여자들은 다른 상에서 찌꺼기를 먹었다.
한번은 아구찜을 크게 했는데 살코기는 모두 남자식탁에만 있고 여자식탁에는 콩나물만 가득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내 상식으로는 연년생인 오빠가 모범을 보여야맞고, 더 어린 나를 부려먹으려면 오빠부터 시켜야했다.
왜 나만시켜요,왜 오빠는 안해요?라고하면 엄마는 대답했다.
하기싫으면 하기싫다고 해라. 치사하게 오빠끌어들이지말고.
당시 나는 저 말이 아주 잘못된 말이란걸 알았지만 정확히 뭐가 잘못된건지는 몰랐다.
이제는 안다. 끊임없이 부당한 차별을 하면서 오히려 약자에게 그 탓을돌리고 비난하는것은 우리사회의 오래된 시스템이라는걸.
여튼,그렇다고 우리엄마가 너무이상한 분은 아니다.본인이 그런집안에서 자랐고 그런 시집살이를했기에 그랬던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렇다고 내친구누구처럼 여자는 공부안시킨다, 대학은 서울로 못보낸다,재수도 절대안시킨다 이렇지는 않았다.
나는 공부를 곧잘했고 많은 서포트를 받아 지금 이렇게 살고있으니까.
나는 반골기질이 있는 성향인데, 늘 차별받았으니 내가 평등에 관심이많았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내 전공도 부전공도 지금의 직업도 모두 저 기질과 관련이 되어있다.
대학시절 나는 학생기자를 하면서 몰랐던 세상을 봤다.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많은 현장에, 심포지움에, 토론회에 참관하고 인권영화제나 여성영화제, 엠네스티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대학때부터의 지인들 중에는 내가 사회운동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는채로 하루하루 닥치는대로 살고있다.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가면서 그냥 세월이 흐르고있다.
돈보다는 명예지 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아이를 낳고보니 돈 많이 벌어야지 생각하며 살고있었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에 있길래 보게 된 영화가 <어른 김장하>다.
잘은 모르지만 김장하선생도 평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업적을 이어오신 것 같아보인다.
연로하신데 눈빛이 아이같았다. 선하기 그지없었다.
70년지기 친구분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다.
너는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비결이 뭐냐?
대답하지않으셨다한다.
장학생을 양성하면서도 장학금을 주면서도 잔소리는 물론 말씀조차않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셨다고 한다.
이번 탄핵때 이슈가 된 문형배 헌법재판관님의 모습도 잠시나왔는데 저 직업 그룹에서 오랜시간을 그것도 그 안에서도 엘리트로 보내왔으면서 저렇게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김장하선생처럼은 못 살더라도 저 분의 종아리만큼까지라도 닿는 삶을 살 수있게 노력해보자.
남편도 그러자고 했다.
찌들고 목표없고 욕심과 화가 차 있던 어느순간부터의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