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아내를 둔 남편의 이야기

내가 꼭 교수되서 호강시켜줄게!

by 군군댄스




하여튼, 대학원생이란, 여러모로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현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사소하고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로 몇 날 며칠을 낭비하며 자기들끼리 재밌다고 킬킬거린다. 그렇다고 돈이나 벌어오면 몰라. 오히려 돈을 열심히 까먹는다. 어제는 어떤 프로그램을 사야 한다고 결제, 오늘은 해외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결제, 내일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고 결제…. 그래, 돈을 썼으면 또 성실히 뭔가를 하면 몰라. 출근도 제멋대로, 퇴근도 제멋대로. 평일엔 쉬다가 주말엔 또 하루 종일 연구실…. 나 같아도 불안해서 미래를 맡길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남편은 내가 직장인일 때 연애를 시작했다. 주중엔 각자의 일로 바빠 잘 만나지 못하지만, 그만큼 주말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것을 먹으며 온 도시를 누비는 꽤나 넉넉한 연인이었다. 돈을 벌지만 당장 누군가를 부양할 필요가 없는 어느 여유로운 사람들이 그러듯, 서로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또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분명, 어느 정도 안정된 사회생활과, 내가 이 정도 능력은 된다는 약간의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아낌없이 모자람 없이 연애를 해왔다.



그렇게 서로 깊어지던 연애 2년 차 즈음, 나는 대학원에 가겠다고 통보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석사를 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 관계가 더 깊어져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빨리 시작해야 결혼에 발목 잡히지 않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물론, 시작은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해 보겠다고 안심시켰지만, 남자친구였던 그때 당시의 내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평소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적인 자신의 여자친구는, 기어코 박사까지 해버릴 거라고. 본인이 결국 우리 사이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대학원을 가겠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그럼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이 가고 싶어 지거나, 다른 걸 하고 싶어 지면 어떡해?"그 말은 나에게 묘한 쾌감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왔다. 아, 이 녀석이 나와의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구나, 그리고 나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구나 하는 퐁퐁 솟아나는 행복함과 함께 이 사람의 꿈을 포기시키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긴장과 걱정. 이 사람을 희생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는 미안함(실제로 나는 남편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어서 모아놓은 돈이 꽤나 있었고, 그 돈이면 대학원도, 결혼준비도 무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기롭게 "너도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인생 짧은데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되받아쳤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돌아보니 남편은 이 말을 듣고는 더욱 갑갑해졌겠다 싶다.



그때도, 지금도 그렇듯 남편은 나를 존중해 줬다. '그럼 나도 교수 와이프 둔 사람 될 수 있어?'라는 약간의 장난과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때려치워도 돼' 하는 다정함과 함께. 이후 우리 사이에 직장인 커플의 풍요로운 데이트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입학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영어 시험을 치러 다닐 때면, 주말마다 같이 영어공부를 하고 시험장에 데려다줬다. 입학하고 나서, 영어 논문이 너무 어려워 엉엉 울 때면 같이 옆에서 한 줄 한 줄 같이 해석해 줬다. chatGPT도 없던 그 시절, 통계 과제를 하다 화가 나 컴퓨터를 던질 듯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자기도 전혀 할 줄 모르면서 나와보라며 어떻게든 여기저기 검색해서 과제를 마무리해 줬다. 물론 그 결과물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주말 데이트 대신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려고 애쓰는 남자친구가 고마운지도 모른 채,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것 같다.



기어코 중간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들어간 여자친구는, 이제는 아내가 되었다. 졸지에 외벌이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오히려 걱정은 우리 엄마아빠가 했던 것 같다). 모두들 "그럼 교수 며느리 들이겠네" 라고 허허 웃으실 뿐이었다. 겉으로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아마 남편은 꽤나 불안했을 거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 대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부가 시작됬으니까.




지금도 때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남들이 출근할 때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기도 하고, 갑자기 뭐에 꽂혔는지 주말 내내 논문을 쓰는 아내지만, 이제 내 남편은 자연스럽게 주말이면 같이 연구실에 출근하고, 옆에서 노트북을 켜며 자기 일을 하고, 나를 데리고 학교 캠퍼스를 돌며 산책을 시킨다. 멘트는 똑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면 그만둬도 돼." 때로는 킬킬거리며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야"라며 한 갈래로 묶은 머리를 잡고 놀리지만, 나는 이 사람이 가장 큰 내 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를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시선은, 내가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025.04.03. 08:50 AM 초안

2025.04.14. 07:30 AM 이어 씀

2025.05.05. 08:00 AM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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