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왜 왔니

차라리 취업을 하지 그랬니

by 군군댄스



랩장의 간헐적 업무 중 하나는 연구실에 컨택한 석사 신입생들의 비공식적 면접을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교수님께 연락한다. 연락을 받은 교수님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학생들을 겁주고, 나에게 RJP(realistic job preview; 현실적 직무소개)를 넘긴다. 자. 이제 내가 현실을 알려줄 차례이다.




나도, 내 동기들도, 선배들도, 후배들도 우리 모두 그랬듯 우리는 대체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온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좋아한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 박사 유학을 가고 싶다…. 과연 그럴까?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요즘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저 뭘 좀 채워 넣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은 아니었는지? 누구나 강의를 들으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말라있다. 다만 대학원은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닌 '연구'를 하는 곳이다. 학부 때처럼 교수님이 강의를 하면 그 내용을 받아 적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뭘 공부를 할지부터 스스로 정해야 한다. '무엇'에 관심을 가져볼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에 대해서 더 알아볼지 스스로 결정하는 건 물론이고 그 와중에 내가 관심 있는 그 '무엇'이 남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주제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어쨌든 이 학문도 산업의 일종이라, 잘 팔리는 주제를 선택할수록 좋은 기회를 얻을 확률이 올라가고, 잘 팔리지 않는 주제를 선택하면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대부분 대학원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은 사실 이 분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학부에서 들은 3학점짜리 강의 하나 혹은 회사에서 해당 직무에 대한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대학원을 들어오지만, 학문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어서 내가 관심 있는 것을 다루기는커녕 그 관심 있었던 어떤 것의 발톱의 때에 집착하는 것이 학자들이다. 어떤 교수님 왈, "연구자는 남들이 보기에 아주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에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대학원에 와서 해당 분야에 발을 담가보면, 가끔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이걸 해서 현실에 무슨 도움이 되지?'라는 현타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 마지막으로, 박사 유학을 가고 싶다고?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박사에 진학하겠다', 이고 하나는 '유학을 가겠다'이다. 첫 번째, 박사 진학은…. 우선 위의 두 가지 현실을 마주하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재밌고, 현타를 느끼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어떤 가치를 느꼈다면 그때 돼서 생각해 보자. 하지만 위의 두 가지가 충족된다고 해서 모두가 박사를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가장 중요한 경제적 문제가 남아있다. 특히 문과 대학원을 지원한다면…, 지원되는 금액은 전무하다고 보는 게 좋다. 학교에서 등록금 면제 목적으로 주는 등록금 면제 명목의 장학금은 한 교수당 한 명만 지원되기 때문에, 인기 많은 랩실에 들어가게 된다면 등록금도 매 학기 내야 한다. 운 좋게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이나 배우자를 만나면 모를까. 심지어 문과 대학원은 학교에서 연구비 목적으로 보조해 주는 금액도 없어 모든 연구와 관련된 비용도 자비로 내야 한다. 내 친구들은 어느새 취업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돼서 해마다 연봉도 직급도 올라가는데 나는 여전히 캠퍼스 안에서 츄리닝을 입고 학식을 먹으며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보고 어디 돈 들어올 일 없는지 고민하며 이리저리 조교를 뛰어야 한다. 대학원 생활 내내 여태 모은 조그만 곳간을 탈탈 털어 돈을 까먹으면서 지내야 한다 이 말이다.



그럼 유학을 가면 다를까? 확실히 해외대학은 문과대학원이어도 펀딩이 꽤 있어,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들 한다. 대체로 신입사원 초임정도 되는 금액을 매해 지원해 주기 때문에 풍족하진 않더라도 그곳에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골에 있는 넓디넓은 대학 캠퍼스 안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매일을 견디는 것은 아무리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박사과정은 짧게는 4년 길게는 6-7년까지 바라봐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타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경쟁을 하며 내 자리를 꾸역꾸역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선배들이 유학을 가고, 중간에 돌아온다. 외로움, 경제적 문제, 지도교수나 동료들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리고 미혼이라면 당연히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생활과 멀어지는 것은 덤….




어제도 두 명의 석사 신입생이 연구실 문을 두드렸고, 교수님은 나에게 턴을 넘겼다. 항상 나는 얘기한다. 유학만을 목표라고 생각하고 교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석사 기간 동안 꾸준히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라고. 정말 이 길을 가도 괜찮은 건지? 나는 이곳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이 기간은 교수님이 당신을 졸업시켜 줄지 말지 테스트하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당신 역시도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이곳은 경제성의 측면에서는 아주 효율이 떨어지는 곳이다. 도망치기엔 아직 늦지 않았다. 또, 당신이 도망간다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게 도망가는 학생들이 교수님 입장에서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2025.04.09. 07:30 AM 씀

2025.05.01. 08:00 AM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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