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챗지피티고 뭐고 없었다 이 말이야

이젠 챗지피티 당신 없인 못살아

by 군군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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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chatGPT 없이 학위를 딴 세대


친구가 이게 요새 유머니? 하고 보내왔다. 생각해 보니 맞다. 챗지피티는 내가 박사에 입학하고 나서 생겼다. 나는 챗지피티 없이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를 딴 세대…. 그걸 생각하니 자존감이 아주 미세하게 살아나는 느낌도 들었다. 석사 초반엔 논문 하나 요약하는 데 두세 시간이 걸렸고, 영어 논문은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며 읽느라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공부했어야 했는데. 요즘은 PDF 파일을 통째로 올리면 번역은 물론이고 요약도 해준다.



그러다 보니 내 안의 꼰대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나 때는 말이야, 어? 영어 논문도 하나하나 사전 찾아가면서 번역하고, 어? 요약도 일일이 고민하면서 했는데 말이야, 어? 요새 애들은 GPT만 돌리면 요약도 나오고 번역도 되고 그러는지 알아요. 그렇게 하면 발전이 없다 이 말이야, 어? 그렇게 쓴 글이 네 글이 되겠어? 앙?



하지만 입술 바로 앞에서 삼킨다. 이것이 요즘 젠지들의 공부법이라면 공부법이겠지. 도태되지 않도록 나도 열심히 배워본다. 챗지피티….




이렇게까지 도움 될 줄 몰랐지


처음 GPT가 유명해졌을 때, 학교에서는 여기저기서 chatGPT 특강을 열었다.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건지, 어떻게 써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홍보도 많이 하고, 관련 책을 썼다는 작가들의 초청 강연 및 시연도 많이 열렸던 것 같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라 처음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그냥 검색엔진 같은 거 아니야? 그냥 좀 좋은 번역기 아니야? 하고.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둘씩 쓰고, 신세계를 봤다며 호들갑을 떠는 걸 보고 나도 슬그머니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코드를 짜고,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에 취약했던 난,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절박함으로 GPT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얘... 쩌는데...?



처음엔 그냥 조심스럽게 한-영 전환 정도만 부탁했는데, 어느새 내 논문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제시해 준다. 점점 나도 모르게 "이 문장 말고 더 나은 표현은 없어?"하고 묻게 되고, "이 이론이랑 연결할 수 있어?"라며 논문의 방향에 대한 판단까지 맡기게 된다. 그렇게 GPT는 나의 원어민 조교이자, 공저자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내 숨은 공동저자 chgtGPT


이젠 더이상 GPT 없이는 글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첫 문장 쓰기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 친구에게 도입부를 제안해달라고 하면 술술 쓴다. 나는 그 글에 나의 색깔을 덧입히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내가 놓쳤던 논리도, 예시도 잘도 찾아준다. 게다가 나보다 영어도 더 잘하니 하나의 한글 단어를 뉘앙스에 따라 다양한 영어 단어로 유려하게도 바꿔준다.



심지어 요즘은 연구 설계 단계에서도 GPT와 대화하는게 당연시되버렸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키려면 그 사람의 시간도 빼앗게 되고, 커피도 한 잔 사줘야 하고, 아이디어가 잘 나오면 잘 나오는데로 그 사람을 공저자로 넣어야 하는지 아닌지, 안 나오면 안나오는 대로 돈과 시간은 쓰고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는 좌절감만 남게 되는데, GPT는 그런 시간적, 심리적, 그리고 물질적 비용 부담이 전혀 없으니까. 굳이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GPT가 아이디어 구체화도, 연구 방법도, 글쓰기도 다 도와줘버리니 나는 그냥 GPT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논문 하나 쓰기가 참 쉽다.




AI 시대에 '나'라는 연구자의 정체성: 그래서 인간은 뭘 해야 하죠?


이제는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지피티 화면을 켜게 된다. 언젠가 한 번 GPT가 오류로 거의 작동하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답답한 속도를 멍하니 보면서 '오늘 일 망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GPT가 없었을 때도 나는 논문을 읽었고,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써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GPT가 없으면 나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GPT랑 대화하고, GPT가 도와준 프레임으로 논문을 쓰고, GPT가 뽑아준 선행연구를 정리하다 보면 나는 내가 '주 저자'가 아니라 그저 ‘GPT의 연구 보조자’가 된 기분이다.



도구가 너무 똑똑해지면 사람이 할 일이 사라질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써보니까, 도구가 너무 똑똑해질수록 사람이 더 똑똑해져야겠다는 압박감이 든다. 이제는 영어를 못해서, 혹은 논리 전개가 약해서 논문을 못 쓰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건 GPT가 다 도와준다. 그러다보니 GPT가 제안해주는 식으로 적당히 그럴 듯한 글만 만들어서는 '나'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GPT를 통해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면 나는 뭐지?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그래서 사람들이 찾게 되는 나의 연구는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지?

그래서 요즘은 계속 묻게 된다. “이건 진짜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인가?” “이건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인가?”

GPT는 나의 연구를 돕는 훌륭한 도구지만 동시에 내가 도대체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인지 매번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낯선 거울이기도 하다. 논문에서 하고 싶었던 핵심 메세지를 정하는 것도, 그리고 그걸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도 나니까. 결국 방향을 잡는 것도 나. GPT가 제안해 준 것을 쓸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나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학문의 특성상, 글의 내용이 사실에 입각한 현상의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 사회를 바라보는 어떠한 시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GPT를 통해서 글을 쓰다보면 이 친구가 제안해주는 글은 대체로 남들이 보기에 좋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럴 듯한 글일 뿐이지 않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쓸 때 당시에는 편하지만, 몇 일 글을 숙성시켜놓고 나서 다시 보면, 이 글이 과연 이 학문, 이 사회 현상을 대하는 나의 관점이 들어간 것이 맞는지, 쉽게 말해서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돈 값 하는 나만의 철학이 들어간 글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에 왜 왔지? 하고. 어쩌면 GPT를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것인지, 나는 어떠한 관점에서 글을 쓰고 어디까지 도움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것은 이 학문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관련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GPT를 켜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을 쓸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 무엇을 쓸지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건 나다. 이 작업을 끝낼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내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학문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집념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참 편하군요...^^


2025.04.16. 08:00 AM 시작

2025.05.15. 07:30 AM 마무리

2025.05.19. 08:00 AM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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