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있게 혼내는 법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 나도 네가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by 군군댄스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긴 타이름 끝에 대꾸하듯 내뱉는 후배의 이 한 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말은 막히고, 좀 어이도 없어서 첫 입을 떼기가 쉽지가 않다. 나도 네가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꼭 이 녀석을, 내가 같이 끌고 가야 하나?






직장생활을 하다 대학원에 온 내가 이곳에서 마주한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이곳엔 '처음 혼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나름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 곧바로 대학원에 온 친구들은 소위 '자기 잘난 맛'에 가득 차 있었다. 공부 좀 했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 남들처럼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학문의 길을 더 파겠다는 약간의 우월감? 특권의식? 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원이라는 곳은 원래가 다들 공부에 익숙해왔고, 공부를 좋아하며, 또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이라는 점에 있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그게 그리 대단한 이력이 되지 않는다. 다들 비슷한 과거의 영광을 가지고 있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어떤 친구들은 여전히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거나 서포트해 주는 건 당연하게 여기고, 정작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 쉽게 상처받거나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그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응원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들을 혼내야 할까? 혼낼 자격은 있을까? 직장에서는 신입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가르치는 게 당연하다.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쨌든 그들도 '월급 받는 값'은 해야 하니까. 그리고 설령 배경이 어찌 됐든 1인분의 몫을 해내게 만들어야 내가, 모두가 덜 고되니까. 그러다 보니 실수에도 단호하게 말할 명분이 있다.


그런데 대학원은 조금 다르다. 우선 대학원은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니라서 밥 값을 할 필요도, 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도 후배가 못하든 말든 내 논문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같이 연구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혼내거나 방향을 잡아줘야 할 이유가 애매해진다. 물론 랩장이라는 내 위치가, 교수님을 대신해서 후배들을 챙겨야 하는 위치긴 하지만, 글쎄, 그렇다고 내가 학교에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내 시간을 쪼개면서 봐줘야 하나? 사실 그저 교수님께, '그 친구가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네요.'라고 한마디 해버리면 그만인데 말이다.



자신은 항상 1등밖에 해본 적이 없어서 여기서도 1등을 하고 싶다는 한 후배는 자신이 여기서도 좋은 실적을 내서 좋은 곳에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저렇게 스스로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어지간히도 자신 있나 싶었더니 웬걸, 지켜보니 '나에게 일을 시키면 잘 해올테니 그걸 좋은 작품(그러니까 논문)으로 만들어서 포장하는 건 (선배인) 네 몫이다' 하면서 '저는 시킨걸 다 했는데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하고 딱 시키는 것만 해오는 것이 아닌가.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말이다.


음... 매번 말하지만 대학원은... 시킨 것만 하던 고등학생의 공부의 연장선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럴 때면 정말 당황스러워서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후배들을 내가 고르고 선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떤 후배들이 들어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나는 그저 좋은 후배가, 착한 후배가 들어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관련해서 으레 '일은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후배' vs. '일은 못해도 착한 후배'에 대한 밸런스 게임을 떠올리곤 하는데, 여러 후배들을 겪어본 결과 내가 사수된 입장에서 오래 같이 일하고 싶은 건 싸가지 없지만 일은 잘하는, 본인이 똑똑하다고 믿는 후배보다는, 일은 못해도 착한 후배다. 단순히 눈앞에 성과는 일 잘하는 후배가 좋을지 모르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 번의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할 수 있어도 다음부터는 더 이상 그 친구와 일을 같이 하고 싶지 않아 진다. 계속해서 내가 타이르면서 그 친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 주는 어미새 같은 일을 하는 건 사양이다.



그래도 이 좁은 학계에서 어쩌겠는가. 졸업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더라도 어떻게든 계속 마주칠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은, 후배를 어떻게 예의 있게 혼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묻게 된다. 회사에서든, 연구실에서든,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냐고, 혹은 속한 곳에서 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시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애써서 후배들에게 잘못을 짚어주고, 가끔은 지나치게 그러지 말라고 설득(?)까지 할 정도로 매달렸던 건, 결국 그 친구가 나중에 겪게 될 불이익이나 돌아가는 길이 안타까워서였던 것 같다. 오지랖이라고 해도, 나는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덜 다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그렇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가 마주할 상처와 추락이 아주 아프다는 건, 나 역시도 겪어본 일이었고 말이다. 물론 내가 좋은 사람처럼 보였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 있고...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 결과는 결국 그 친구의 몫이고, 나는 내가 지킬 선을 지키면서, 나 자신의 에너지 역시 지키는 쪽이 맞지 않나 싶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다 오히려 내가 상처받고 내가 지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주변 사람들은 조언해 준다. 단호하게 말할 것. 침묵을 적절히 활용할 것. 모든 걸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약간의 간격을 둘 것.

왜 그렇게 했냐고 웃으며 묻거나, "잘못 배웠네" 하고 가볍게 짚어주는 기술도 때론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 조언들을 듣고, 과거의 나를 곱씹어보면, 결국 예의 있게 혼낸다는 건, 상대를 바꾸려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를 선택하는 일인 것 같다. 모든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로 남을 순 없겠지만, 같이 있는 이 짧은 순간만큼은,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남았으면 한다.




2025.04.24. 07:30 AM 씀

2025.05.07. 07:30 AM 글 마무리

2025.05.15. 08:00 AM 발행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