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도 죄다.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by 군군댄스

감기몸살이 온 지 2주가 넘었다. 하루 이틀 정도만 쉬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오래간다. 덕분에 나는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은 채 근근이 연명하는 것처럼 누웠다 책상 앞에 앉았다 반복 중이다. 정신은 흐릿한데, 메일은 계속 오고, 나를 찾는 카톡은 열어보기 무섭게 쌓인다. 병원을 가면서도 버스 안에서 계속해서 핸드폰을 잡고 있다. 머릿속은 "메일 답장해야지", "코웍하는 동료들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조금만 누워있다가 몇 시쯤 다시 시작하자"의 반복. 급기야는 병원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으면서도 논문을 읽고 있다. 이게 맞나? 정말 아픈데, 쉬는 건 어쩐지 죄가 된 기분이다. 나는 쉬어도 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회사원이라면 그래도 연차라는 게 있어서 휴가를 냈다고 말하면, 적어도 그날 하루는 연락 없이 지나갈 수도 있을 텐데, 대학원생은 그러지도 못한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는 건, 곧 쉴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언제든 연락이 닿아야 하고, 언제든 응답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병원에 가는 길에도 "이따가 잠깐 통화 가능할까?"라는 교수님의 메시지를 보면, 진료 대기 중이던 손이 저절로 가방 속 아이패드로 향한다. 병원에 있다는 말조차, 누군가에게는 그저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더 서러운 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일수록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이 단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고, 대학원생이 하나의 논문만을 쓰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도 나를 중심으로 여러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프로젝트 개수만큼,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의 수만큼 나는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어진다. 지금 나는 논문 피드백이 필요하고, 연구 설계를 조언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런 상황에서 "몸이 안 좋아 며칠 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모든 흐름은 멈춘다. 함께 일하는 선후배들에게는 나의 사정을 이해할 여유가 없고(다들 나만큼이나 바쁘기 때문에..), 나는 괜히 부탁해 놓고 일을 미뤄버린 무책임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점점 더 말하지 않게 된다. 몸이 안 좋아도 가능한 한 조용히 버틴다. 잠수도, 회복도, 공식적인 병가도 없는 이 세계에선 아프더라도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조용히 사라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어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같이 논문을 쓰더라도 논문 저자가 제1 저자와 공동 저자.. 이런 식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내가 어떤 저자이냐에 따라서 교수 임용과 승진에 필요한 점수가 달라지는 만큼, 본인이 제1 저자가 아니면 그만큼 해당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제1 저자인 내가 한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 프로젝트는 그냥 자연스럽게 잊히고, 조용히 사라진다. 아무도 대신 신경 써주지 않는다. 아픈 건 이유가 되지 않고, 부재는 곧 무관심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병원에 누워 있는 와중에도 "존재 증명"을 위해 슬쩍 메일을 보내거나, 코멘트를 단다. 나도 지금 작업 중이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그런 구조 속에 있다 보니, 아픈 나를 가장 야박하게 대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 된다. "내가 지금 누워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빠진 사이에 흐름이 끊기진 않을까?", "그냥 참고 가야 하는 건 아닐까?". 몸보다 마음이 더 무너지는 질문들. 그래서 아픈 날엔 더 고독하고 더 작아지는 기분이다.



나는 별로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하루쯤, "오늘은 아프니까 푹 쉬어"라는 말에 마음까지 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픈 것도 당연한 일이고, 잠시 멈추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나 대신, 나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은 그 말을 나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오늘은 괜찮아. 너는 지금 아픈 거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야."하고 말이다.





2025.05.19. 07:00 AM 씀

2025.05.26. 08:00 AM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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